◇미중 통화전쟁/타무라 히데오 지음·정상우 옮김/276쪽·1만9800원·오픈하우스
“한국은행이 정부로부터는 독립적이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로부터는 그렇지 않다.”
2022년 8월 이창용 한은 총재의 이 발언은 국제 금융시장이 돌아가는 현실 논리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미국에서 물가가 뛰면서 2022년 3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기준금리를 5%포인트나 끌어올리자, 같은 기간 한은도 경기침체를 감수하며 1.25%에서 3.5%로 금리를 대폭 높였다. 한미 기준금리 차이가 벌어질수록 외국인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인 달러를 찾아 국내 금융시장에서 돈을 뺄 가능성이 높아져서다. 대부분의 무역, 금융결제가 달러로 이뤄지는 글로벌 경제에서 외자 이탈은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일본 경제 전문 언론인이 쓴 이 책은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의 ‘위안화 띄우기’를 최근의 국제 정치 흐름과 맞물려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세계 역사에서 통화는 군사력과 더불어 패권 확보에 핵심적 역할을 해왔다. 강대국들이 지구를 절멸시킬 수 있는 핵무기를 실전에 사용하기 힘든 상황에서 패권 유지 수단으로서 통화의 중요성은 클 수밖에 없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중국의 위안화 확대는 러시아에 그치지 않는다. 시진핑은 2022년 12월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석유에 대한 위안화 거래를 제안했다. 산유국들이 받는 위안화는 달러보다 유동성이 떨어지지만, 막대한 물량의 중국산 상품 수입에 사용될 수 있다. 저자는 러시아를 지원하는 중국에 대해 금융제재를 주저하는 미국 바이든 정부의 올해 대선 승리 여부가 미중 통화전쟁의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