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의회, 상대 비난엔 회의장 퇴장 가능 규정 여야, 극단정치 국회에 불러들인 책임 지라
윤완준 정치부장
“Wilfully, wilfully misled parliament(의도적으로, 의도적으로 의회를 오도했다).”
이언 블랙퍼드 스코틀랜드국민당 하원 원내대표는 2022년 1월 영국 하원 회의장에서 보리스 존슨 당시 영국 총리를 이렇게 비판했다. 린지 호일 하원의장은 이 말을 취소하라고 거듭 요구했지만 블랙퍼드는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그는 “총리가 진실을 말하지 못할 정도로 신뢰받지 못한다면 내 잘못이 아니다”라고 했다. 집권 보수당 쪽에서 고성이 나왔다.
“하원 의사규칙 43조에 따라 당장 하원 회의장을 떠날 것을 명령합니다.”
하원 의사규칙 43조는 의장 지시에 계속 불복하는 의원에게 회의장 퇴장을 명할 수 있는 규정이다.
호일이 블랙퍼드에게 발언 취소를 요구한 것은 ‘비의회적 언어(unparliamentary language)’를 쓰지 말라는 규정이 영국 의회에 있기 때문이다. 영국 하원의원들이 “거짓말하고 있다” “의도적으로 호도하고 있다” 등의 발언으로 서로 비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영국 의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이런 ‘비의회적 언어’에는 불한당, 겁쟁이, 멍청한 놈, 쥐새끼, 끄나풀, 배신자 같은 말이 포함돼 있었다.
2016년 84세의 데니스 스키너 노동당 하원의원도 이 규정에 근거해 회의장에서 쫓겨났다.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총리를 “거짓말쟁이(dodgy) 데이브”라고 불렀다는 이유였다.
지난해 9월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국회 대정부 질의 도중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공산전체주의에 맹종한다”고 공격했다. 그러자 박영순 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이 “쓰레기” “부역자” “빨갱이” 등 표현으로 태 의원을 공격했다.
더 큰 문제는 여야의 막말이 상대 진영을 악마화하고 극단적 적대감을 부추기는 증오언어라는 점이다. 이들의 언어가 강성 지지층들의 증오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양극단의 강성 지지층들은 자기 진영의 극단적 주장을 맹목적으로 믿고 상대 진영의 말은 무조건 저주한다.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보면 정치적 내전 상태나 다름없다. 이런 정치 양극화에 기대 정치적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장본인이 증오언어를 뿜어내는 정치인들이다.
정치인들은 증오언어를 통해 국회의원 자리를 유지한다. 그들로서는 선순환이지만 우리 정치는 악순환에 빠진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자극적인 언어만 언론에 부각되니 여당 의원들도 일부러 그런 언어를 골라 쓴다. 언론에 한 줄 안 나도 증오를 부추기는 언어를 쓰고 싶지 않다”고 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정치란 비판하고 싸워도 술 한잔하며 오해를 푸는 것이다. 이제는 여야 의원 중 그런 사람이 없다. 상대에 대한 저주만이 남았다. 같은 당에서도 정적을 없애겠다는 이유로 허위 정보도 불사한다”며 한숨 쉬었다.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