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조합 집행부 부재로 공사비 1800억 체납되자 1월 1일 재개발 공사 전면 중단
“조합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 곪다가 결국 터질 게 터졌다. 공사가 멈춰버렸으니 어쩔 텐가. 요즘 들어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아주 골치 아파 죽겠다.”(서울 은평구 대조1구역 재개발 조합원)
서울 강북 재개발 ‘최대어’로 꼽히는 은평구 대조1구역 재개발사업 현장의 공사가 1월 2일 전면 중단됐다. 시공사인 현대건설은 재개발 조합으로부터 공사비 1800억 원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12월 공사 중단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현대건설은 1월 1일자로 공사 중단 및 유치권 행사에 돌입했고, 새해 첫 근무일인 2일 실제로 현장은 멈춰 섰다.
조합원들 “골치 아파 죽겠다”
1월 3일 서울 은평구 대조1구역 재개발 공사 현장 출입문에 ‘공사 중단’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부착돼 있다. [김우정 기자]
1월 3일 기자가 찾은 대조1구역 공사 현장의 5개 출입문에는 하나같이 노란색 배경에 붉은색 글씨로 ‘공사중단(24년 1월 1일~)’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유치권 행사 중으로 사전 허가 없이 무단출입을 금한다”는 ‘유치권자’ 현대건설 명의의 경고문도 함께 붙어 있었다. 접이식 철문은 빈틈없이 닫혀 있었고, 하단부에도 목재 합판을 덧대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비좁은 틈으로 멈춰 선 타워크레인과 짓다 만 3~4층 높이 아파트가 살짝 보일 뿐이었다. “지난해 12월 27일 오후 크레인이 멈췄고, 28~29일 인부들이 현장 정리를 하고는 모든 공사가 중단됐다”는 게 인근 주민들의 전언이다. 한 출입문의 열린 쪽문으로 현장 관계자 대여섯 명이 부지런히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기자임을 밝히고 공사가 중단된 현장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묻자 현대건설 로고가 박힌 점퍼를 입은 직원이 손사래를 치며 쪽문을 닫았다.
대조1구역 공사 현장 주변 상가 건물 1층에는 근로자가 주 고객인 함바집과 부동산공인중개사사무소가 여럿 있었다. 특히 함바집 간판을 내건 업소 대부분은 오전 11시가 넘은 시간까지 문을 열지 않았고, ‘오늘은 쉽니다’라고 써 붙인 곳도 적잖았다. 평소라면 공사 현장 근로자가 오전 5시 30분쯤 아침식사를, 오전 11시쯤 점심식사를 하는 식당들이다. 공사 현장 출입문에서 가까운 한 식당은 아예 집기를 모두 빼낸 채 공사를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식당 사장 60대 주 모 씨는 “공사가 멈춰 장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김에 아예 리모델링에 나섰다”고 말했다. 심경을 묻자 그는 “답답하지만 어쩌겠느냐”면서 “조합 내부 갈등이 워낙 심했는데, 지난해 11월 총회 개최가 불발된 게 현대건설 입장에선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이 아니었을까 싶다”고 밝혔다.
2415채 규모 ‘힐스테이트 메디알레’로 탈바꿈
은평구 대조1구역 재개발 공사 현장 펜스에 붙은 ‘유치권 행사’ 경고문. [김우정 기자]
대조1구역 재개발사업은 은평구 대조동 일대 약 36만㎡에 지상 25층 높이 아파트 28개 동 2415채를 ‘힐스테이트 메디알레’라는 이름으로 짓는 게 뼈대다. 2022년 10월 착공해 당초 2026년 1월 준공 예정이었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공정률은 약 22%다. 이 지역 재개발사업은 부동산시장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서울지하철 3·6호선 불광역·연신내역과 6호선 구산역·역촌역이 가까운 데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노선 연신내역이 개통될 예정이라 교통 인프라가 우수하기 때문이다. 단지 전체가 평지이고, 대은초를 품은 ‘초품아’라는 것도 장점이다. 대조1구역 재개발이 완료되면 신축 대단지가 귀한 은평구에서 새로운 대장 아파트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문제는 그간 대조1구역 재개발 조합 안팎으로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공사 착공 때만 해도 순조로워 보이던 사업은 지난해 2월 소송으로 조합장 직무가 정지되고, 직무대행 체제마저 법원의 효력정지 가처분 인용으로 난항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상반기로 예정됐던 일반분양도 불발됐다. 조합 집행부가 제 기능을 못 하는 상황에서 그간 ‘외상공사’를 해왔다는 게 시공사 측 설명이다. 한 도시정비사업 전문가는 “최근 재건축·재개발 현장에서 고금리 및 건자재 값 상승으로 공사비 증액을 놓고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이 생기는 경우는 많지만, 대조1구역은 상당히 특이한 경우”라면서 “조합장이 사실상 공석인 상황에서 조합이 시공사에 공사비를 제대로 못 줬는데 공사가 1년 넘게 진행된 재개발 현장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최근 부동산 경기가 안 좋은 데다 공사비가 높아진 점도 큰 문제다. 다행히 공사가 다시 시작되더라도 조합원 분담금이 커져 또 다른 갈등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현장에서 만난 대조1구역 조합원들은 공사 중단이나 조합 내홍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길 꺼렸다. 지역사회와 조합원 분위기가 “풍선에 바늘을 갖다 대면 뻥 하고 터질 것 같은 긴장 상황”이라는 것이다. 취재에 응한 이들은 일부 조합 간부나 비상대책위원회 인사 이름을 거론하며 “공사 중지에 책임을 져야 한다” “하루빨리 조합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대건설의 공사 중단 후 향후 대응 방안을 놓고 조합원 사이에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뜻을 같이하는 수백 명이 새로이 단체 카카오톡방을 만들어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는 게 조합원들 설명이다. 지난해 12월 현대건설 측이 공사 중단 상황을 알리고자 연 설명회에 참석했다는 한 조합원은 “결국 터질 게 터졌구나 싶었지만 실제 공사 중단은 어떻게든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공사가 하루빨리 정상적으로 이뤄졌으면 좋겠다. 평(3.3㎡)당 공사비를 올려줘도 좋으니 아무튼 빨리 집을 지어야 할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인근 한 부동산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공사 중단이 언론에 보도된 후 매수 문의가 1~2건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실제로 거래가 이뤄지기는 어렵다”며 “재개발이 원활하게 진행돼야 인근 공인중개사사무소도 같이 살 수 있는데, 공사가 언제 정상화될지 몰라 답답하다”고 말했다.
현대건설 “조합 집행부 부재로 공사 어렵다 판단”
공사가 중단된 대조1구역 재개발 현장. [김우정 기자]
향후 대조1구역 공사가 재개될 가능성은 없을까. 현대건설 관계자는 1월 3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조합 집행부 부재로 공사를 안정적으로 진행하기 어렵다고 판단돼 공사를 중단하고 불가피하게 유치권을 행사하고 있다”면서 “조합의 빠른 사업 정상화를 통해 조속한 시일 내 공사가 재개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향후 정상화 방안을 묻는 질문에는 구체적 답변을 피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건설 정도 되는 규모의 업체가 공사 중단이라는 강수를 둔 것은 당장 1800억 원 규모의 미납 공사비뿐 아니라, 재개발 조합이 정상화되지 않을 경우 현장을 계속 운영할 수 없다는 불신감이 쌓였기 때문일 것”이라며 “대조1구역 사태의 경우 조합 난맥상이 주된 원인이기에 결국 조합과 조합원이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22호에 실렸습니다〉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