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카이로 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라이벌리즘>과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가자지구 전쟁’, ‘사우디아라비아의 2030 엑스포 유치’, ‘앙숙 사우디와 이란의 외교관계 복원’, ‘스트롱맨들의 대통령 선거 승리(튀르키예, 이집트)’, ‘자국민 학살 독재자(시리아)의 국제사회 복귀’…
지난해 중동에서는 ‘세계의 화약고’, ‘국제 이슈의 중심지’란 말에 어울리게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많은 중동 이슈들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또 앞으로도 중동에서는 많은 갈등과 변화가 나타날 것입니다.
올해 관심 가질 필요가 있는 중동 이슈들을 정리해봤습니다.
‘하마스 궤멸’이란 목표 아래 이스라엘은 대규모 지상군을 가자지구에 투입했고, 지속적으로 공습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하마스 보건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10월7일(현지 시간) 하마스의 도발로 시작된 가자지구 전쟁으로 2만 명 넘는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습니다. 이중에는 여성과 어린이도 적지 않습니다.
지난해 10월 17일(현지 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부상당한 주민들이 알시파 병원으로 대피해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이 계속되면서 이어지며 가자지구에선 2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가자=AP 뉴시스
유엔을 포함한 국제사회에서는 이스라엘의 보복이 과도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이스라엘이 이번 기회에 가자지구를 아예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만들고, 사실상의 인종청소를 자행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옵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은 하마스 구성원들이 일반 주민과 섞여 있고, 하마스가 의도적으로 무기와 지휘 시설 등을 민간인 거주 지역에 배치하고 있다고 반박합니다. 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가 팔레스타인 영토란 점을 부인하진 않습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방탄 헬멧과 조끼를 착용한 채 지난해 12월25일 가자지구 북부를 찾아 군 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가 궤멸될 때까지 전쟁을 계속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가자=AP 뉴시스
가자지구 전쟁이 언제 끝날지도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하마스가 궤멸될 때까지 전쟁을 멈출 수 없다”고 수차례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끝이 언제일지 또 하마스 궤멸이 가능할지 아직 누구도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헤즈볼라는 1982년 설립될 때부터 이란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헤즈볼라는 이란이 중심국인 시아파이며, 당연히 친이란 성향입니다. 하마스와도 다양한 협력을 진행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이스라엘은 2일(현지 시간) 하마스 지휘부 서열 3위인 살레흐 알 아루리를 레바논 수도 베이르투 외곽에서 무인기(드론)를 이용해 살해했습니다. 가자지구 전쟁 발발 뒤 이스라엘이 하마스 고위관계자를 가자지구 밖에서 제거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당연히 하마스는 물론이고 헤즈볼라와 이란도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을 언급했습니다.
2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한 건물에서 큰 폭발이 발생해 건물이 크게 파괴됐다. 이날 이스라엘은 베이루트 여러 지역에 대규모 무인기 공격을 감행했고, 이 과정에서 하마스 지휘부 중 서열 3위인 살레흐 알 아루리가 사망했다. 하마스, 헤즈볼라, 이란 모두 이스라엘으 크게 비난하며 보복을 선언했다. 베이루트=AP 뉴시스
2006년에는 이스라엘 군인을 납치했고, 34일간 이스라엘과 전쟁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궤멸’을 외치며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지만 여전히 헤즈볼라는 건재합니다. 또 이스라엘은 군인을 중심으로 160여 명(레바논에선 1000명 이상 사망)이 사망했습니다. 하마스의 지난해 10월 이스라엘 공격전까지는 무장정파와의 충돌로 가장 많은 이스라엘인 사망한 때였습니다.
레바논에서 행진 중인 헤즈볼라 대원들. 이스라엘군 홈페이지 캡처
하지만 헤즈볼라에게도, 이란에게도 이스라엘과의 전면전은 심각한 도박입니다. 미국 역시 중동이 시끄러운 건 큰 부담입니다. 무엇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올해 11월 대선을 앞두고 있습니다. 중동 정세가 혼란스러울수록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불리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도 헤즈볼라와의 전면전은 부담입니다. 그러나 부정부패 혐의로 큰 어려움을 겪어 왔고, 이번 하마스의 도발에 제대로 대응 못해 ‘정치적 위기’에 몰려 있는 네타냐후 총리는 정국이 안정될 경우 국민들의 비판과 정권 교체 압박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런 만큼 전시 상황을 최대한 오래 끌고 가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옵니다.
현재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높고, 바이든 대통령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 10개월이나 남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수 있다는 전망이 꽤 힘을 얻고 있습니다.
만약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미국 대통령이 된다면 중동에서도 적잖은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북한 핵 문제, 나아가 한반도 관련 이슈에서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전 미국 대통령들과 크게 다른 모습을 보인 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1월 대선을 앞두고 낮은 지지율로 고전하고 있다. 혼란스런 중동 정세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1월 미 대선서 승리하고 재집권할 경우 중동에는 다시 한번 상당한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 AP 뉴시스
만약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어떤 중동 정책이 추진될까요? 바이든 대통령 집권 초에는 미국이 트럼프 행정부 시절 탈퇴했던 이란 핵 합의를 복원하려 할 것이란 기대가 있었습니다. 또 트럼프 행정부 시절보다 안정적인 중동 정책이 추진될 것이란 기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바이든 행정부의 중동 정책은 딱히 성과가 없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가자지구 전쟁만 아니었으면 단연 사우디였을 갑니다. 최근 중동 뉴스의 중심지는 확실히 사우디란 생각이 듭니다.
‘아랍의 맹주’, ‘이슬람의 성지 수호국(3대 성지인 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중 메카와 메디나가 사우디에 있음)’인 사우디는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의 지휘아래 다양한 개혁‧개방 조치, 국가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서울의 면적의 44배에 이르는 최첨단 도시를 만드는 ‘네옴 프로젝트’는 그중 핵심입니다. 삼성, 현대, LG 등 한국 주요 기업들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 글로벌 기업들도 네옴 프로젝트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네옴 프로젝트와 관련해 변화 내지 새로운 발표가 있을 때마다 관심이 집중 됩니다.
사우디의 ‘2030 엑스포’ 로고. 아랍뉴스 홈페이지 캡처
2029년 동계 아시안게임, 2030년 엑스포, 2034년에는 아시안게임(하계)와 월드컵… 사우디는 말 그대로 이제 국제 이벤트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사우디는 글로벌 기업 유치 전략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습니다. 사우디 정부는 지난해 12월 초 자국으로 중동지역본부를 이전하는 기업에 대해 법인 소득세를 30년 간 면제해 주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또 중동지역본부나 거점 연구개발(R&D)센터를 사우디에 만드는 기업에 대해선 정부나 공공기관의 프로젝트를 수주할 때 더 많은 혜택을 줄 예정입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사우디 왕세자는 ‘네옴 프로젝트’와 ‘2030 엑스포’ 등 다양한 ‘국가 개발 사업’을 진행 하며 사우디를 중동 뉴스의 중심지로 만들고 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동아일보 DB
무함마드 왕세자의 ‘새로운 사우디 만들기’ 작업은 올해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우디는 계속 중동 이슈의 중심지로 많은 주목을 받을 것입니다.
이란은 중동에서 사우디, 튀르키예와 함께 지역 패권을 놓고 경쟁 중인 나라입니다. 특히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같이 정세가 불안하고 시아파 비중이 큰 나라에서 시아파 무장정파, 종교지도자, 언론 등을 조직적으로 지원하며 영향력을 키워왔습니다. 이른바 ‘시아벨트 전략’이죠.
이란 수도 테헤란의 중심부 발리아스르 거리를 걷고 있는 이란 여성들. 이란에서는 3월1일 총선이 치러진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경제난과 보수적이며 경직된 정치에 불만이 많은 이란 국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에 많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동아일보 DB
물론 이란의 선거는 시아파 최고지도자가 선거에 출마하려는 사람들을 모니터링하고, 정치적 발언 등도 제한되기 때문에 글로벌 스탠더드 기준으로 볼 때 ‘자유로운 선거’라고 하기는 어려습니다. 지난해 11월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야당 후보 중 28% 이상이 출마 자격을 잃었고, 많은 유권자가 투표를 거부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이번 총선이 안정적으로 치러지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하지만 선거 과정에서 이란 국민들의 정서와 현지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유럽, 일본에서는 이란 선거에 많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카이로특파원으로 활동하던 2020년에도 이란 총선이 있었는데, 당시 일본 신문사들은 테헤란 특파원 외에도 기자를 현지에 파견하며 적극적으로 취재했었습니다.
2022년 9월24일 그리스 아테네 산타그마 광장에서 히잡 착용 불량으로 체포된 뒤 의문사한 ‘마사 아미니 사망 사건’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22세 이란 여성이 ‘히잡 착용 불량’으로 체포된 후 의문사한 사건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시위에 참가한 한 여성이 항의 표시로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다. 아테네=AP 뉴시스
당시 이란 안팎에선 히잡 착용 의무화로 인한 여성 억압뿐 아니라 경제난과 폐쇄적인 정치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면서 지속적인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많았습니다. 또 계기가 있을 때마다 시위가 계속 발생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습니다.
이번 이란 총선을 앞두고는 어떤 움직임이 이란에서 나타날지 궁금해집니다.
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