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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인터뷰]“韓-호주, 인도태평양 공동 린치핀… 양국 군사협력 강화해야”

입력 | 2024-01-07 23:33:00

이임 앞둔 레이퍼 주한 호주대사



3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10일 한국을 떠나는 캐서린 레이퍼 주한 호주대사는 동아일보와 마지막 인터뷰를 갖고 “민주주의 중견국인 한국과 호주는 불확실한 국제안보 상황에서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고 있다. 양국이 군사 협력을 강화하는 것 또한 지극히 자연스럽다”고 강조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한국과 호주는 인도태평양의 공동 ‘린치핀(linchpin·핵심축)’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충돌이 발생하는 지금, 두 나라가 힘을 합쳐 원칙과 규범에 입각한 국제질서를 수호하고 개방적이고 번영하는 인도태평양을 만들어야 합니다.”

3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10일 한국을 떠나는 캐서린 레이퍼 주한 호주대사(54)가 동아일보와 마지막 한국 언론 인터뷰를 갖고 “국제 정세가 어느 때보다 혼란한 지금 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법치 등을 중시하는 두 나라가 특히 군사 협력을 강화해 중견국 지위에 걸맞은 지도력을 보여야 한다. 일부 강대국의 대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마차나 수레의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축에 꽂아 고정시킨 ‘린치핀’이 해당 바퀴의 안정을 담보하듯 한국과 호주 모두 인도태평양의 평화와 안정을 담보하는 핵심 국가가 돼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양국 수교 60주년을 맞은 2021년 1월 최초의 여성 주한 호주대사로 부임했다. 전임자 17명이 모두 남성이었던 데다 그의 외조부가 6·25전쟁 당시 호주 해군 호위함 ‘와라뭉가’를 타고 한강 유역의 경계 및 병참을 담당했던 참전용사여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집무실에서 가졌던 취임 초 인터뷰와 달리 이번 인터뷰는 지난해 12월 20일 서울 성북구 주한 호주대사관저에서 이뤄졌다. 서울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전경의 관저 거실에서 만난 그는 “부임 직후 첫 인터뷰를 동아일보와 했는데 마지막 인터뷰도 하게 되어 감사하다. 귀국 후 (호주) 외교부에서 통상 업무를 맡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등으로 국제 정세가 혼란하다.


“두 개의 전쟁은 물론이고 다른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분쟁과 충돌은 국제 질서와 규범을 따르지 않는 세력이 많아져 생긴 일이다. 일부 국가는 질서를 지키지 않는 것을 넘어 아예 파괴하려고 한다. 이에 따른 혼란과 갈등을 일부 강대국의 노력만으로 바로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과 호주 같은 중견국이 질서를 수호하는 일에 앞장서야 ‘국제 규범을 지키자’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이를 지키지 않는 나라도 줄어든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에 3년째 맞설 수 있는 것은 미국이 뒷배가 돼줄 뿐 아니라 한국, 호주 등 중견국이 직간접적인 군사,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고 대러시아 제재에도 동참했기에 가능했다. 최근 인도태평양의 안정과 평화를 위협하는 세력이 증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역내의 핵심 중견국인 한국과 호주가 더 협력해야 한다. 한국은 인도태평양 북부의 린치핀, 호주는 인도태평양 남부의 린치핀이다.”

―양국의 전략적 협력, 특히 군사 협력이 강화됐다.

“지난해 가을 양국 해군이 ‘해돌이(한국 해군의 돌고래 캐릭터)-왈라비(호주 상징인 캥거루과 동물)’ 연합훈련을 실시했다. 한국군은 호주에서 실시된 2023년 ‘탈리스만세이버’ 연합 훈련, 2022년 ‘피치블랙’ 공군훈련 등에도 F-16 전투기, KC-330 공중급유기 등의 최신식 무기를 보내 상호 운용성과 작전 역량을 강화했다.

호주는 한국산 무기의 수입을 늘렸다. 지난해 말 보병전투장갑차 ‘레드백’ 129대를 24억 달러(약 3조1380억 원)에 구입하기로 했고 2021년 K9 자주포 ‘AS9’도 사들였다. 전 세계에 ‘K방위산업’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호주가 일익을 담당했다고 본다.

군사 협력의 활동 범위 또한 넓어졌다. 두 나라는 남태평양의 섬나라 나우루에서 지뢰 제거를 위한 ‘랜더세이프’ 작전을 같이 했다. 비무장지대(DMZ)의 지뢰 제거 경험이 풍부한 한국군의 역할이 상당했다고 들었다.

이런 협력이 가능했던 이유로 2013년부터 시작된 양국의 격년 국방·외교장관 회의 ‘2+2’를 꼽고 싶다. 양국 관계의 주요 뼈대로 두 나라의 협력은 물론 삼자, 다자협력의 틀도 제공한다. 최근 한국, 호주, 일본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국가와의 해양연계성 포럼을 개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5월 호주에서는 노동당 소속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가 취임하며 보수당에서 노동당으로의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그럼에도 인도태평양 중시 등 외교안보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되고 있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전 정권의 외교안보 정책을 계속 집행하고 안보 정보는 다른 정파와도 반드시 공유해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 전체에 뿌리내렸다. 호주는 2021년 미국, 영국, 호주 3자 안보협의체 ‘오커스(AUKUS)’에 가입하면서 미국으로부터 핵추진잠수함(SSN)을 구입하기로 했다. 이에 2030년부터 최대 5척의 SSN을 도입할 예정이며 이를 순조롭게 준비하고 있다. 구입 결정 당시 일각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꼭 이 역량을 확보해야 하느냐. 다른 분야에 쓸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제는 사회 전반에 ‘안보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국민 공감대가 형성됐다.”

―호주는 북한 제재에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북한이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발사한 직후 한국, 호주, 미국, 일본 4개국이 이에 연루된 북한 주민과 단체 등을 겨냥한 공동 제재를 단행했다. 4개국이 최초로 공동 대북 제재에 나섰다는 것은 북한의 거듭된 도발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국제사회의 의지를 보여준다. 호주는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북핵은 인도태평양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며 호주 국익과도 직결돼 있다. CVID를 위해 한국, 미국 등은 물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다른 파트너들과도 대북 제재 등의 협력을 계속할 것이다. 일부 국가가 제재를 철저히 이행하지 않는 것은 유감이다.”

―참전용사의 외손녀로서 6·25전쟁에 관한 여러 업무를 수행했다.


“한국과 호주는 2019년 제4차 ‘2+2’ 외교·국방장관 회의에서 호주 참전용사의 유해 발굴에 협력하기로 했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 7월 맷 키오 호주 보훈장관이 한국을 찾았고 석 달 후에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호주로 건너가 생존 중인 참전용사와 유가족을 방문했다. 이런 업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것은 뜻깊은 경험이었다. 나의 외조부는 6·25전쟁 당시 한강 일대의 경계 및 병참 업무를 담당했다. 최근 외조부와 비슷한 시기는 아니지만 같은 함정에서 근무했다는 생존 용사를 만나 정말 기뻤다. 자신의 생명을 건 그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기에 한국의 오늘이 가능했고 나 또한 이곳에 대사로 부임할 수 있었다. 열 살 때 돌아가신 외조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 늘 아버지인 외조부를 그리워하시는 어머니를 대사 재직 중 한국에 모시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전쟁사에 관심이 많은 어머니는 늘 한국에 오고 싶어 하셨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고령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30년 차 외교관이다. ‘좋은 외교관’의 정의는.

“‘매력(charm)’과 ‘집요함(persistence)’을 갖춘 사람. 외교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 행위다. 강압을 가해선 안 되며 반드시 매력과 설득을 통해 상대방을 사로잡아야 한다. 한 번에 되는 일이 아닌 만큼 노력을 거듭해야 한다. 외교뿐 아니라 인간의 일상생활, 국가 관계에도 적용되는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한국민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는.

“임기 중 양국 수교 60주년을 맞고 양국 관계의 ‘포괄적전략동반자(CSP·Comprehensive Strategic Partnership)’ 관계 격상에 기여해 영광이다. 한국이 2022년 말 ‘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한 것 또한 인도태평양을 중시하는 호주에 큰 의미가 있다. 한국에 호주만 한 최적의 전략적 파트너가 없다는 점을 기억해주시길 바란다. 최초의 여성 주한 호주대사라는 점에 주목하는 분도 많아 감사했다. 미약하지만 나의 존재가 더 많은 여성이 지도자로 거듭나는 데 ‘역할 모델’이 되었으면 한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