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석 정치부 차장
“국정의 ‘그랜드 디자이너’가 안 보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국민의당 박지원 전 대표가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내각 후보자에 대한 ‘5대 인사 원칙 파기’ 논란이 불거졌을 때 기자에게 이같이 말한 적이 있다. 판을 크게 보고 국정과 인사(人事)를 추진하는 인물이 안 보인다는 얘기였다. 제3당의 성가신 지적일 수도, 국정 방향에 대한 고언이기도 했다.
전(前) 정부를 ‘이권·이념 패거리 카르텔’로 비판하며 3년 차를 맞은 윤석열 정부 인사의 그랜드 디자인은 무엇인가. 지난해 이어진 대통령실 개편, 개각, 정부 주요 인사에 더해 총선용 정책 보따리가 풀리는 것을 바라보면서 든 의문이다.
억눌렸던 인사 수요는 연말에 이르며 폭발했다. 마음 바쁜 행정관들이 빠져나가더니 총선 국면이 다가옴에 따라 수석비서관, 장차관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기재부 출신의 방문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국무조정실장에서 장관으로 임명된 뒤 3개월 만에 총선용으로 다시 차출됐다. 대통령비서관 출신 ‘윤심’ 차관들이 5개월 만에 직을 던졌다. 국정의 연속성보다는 ‘총선 다걸기용’ 인사라는 인상을 줄 법했다.
정점은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의 교체였다. 교체설이 돌던 그는 이관섭 대통령정책실장 인사를 직접 발표한 지 28일 만에 자신의 사직을 알리고 물러났다. 여권 안팎에서 “정책실장 신설이 대통령실 개편의 끝이 아닐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지만, 그의 물러남에 대한 명쾌한 설명은 들리지 않는다.
집권 3년 차, 민생의 실력으로 승부할 때다. 윤 대통령이 강조한 ‘검토만 하는 정부’가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해 행동하는 정부’의 첫걸음은 인재풀의 다양화라고 생각한다. 사람 한 명에 조직이 좌우되겠냐고 하지만 “사람이 곧 미래이고 경쟁력”이라는 신년사 대목은 여전히 유효하다. 검사와 기재부 관료 일색의 인선으로는 국민을 감동시킬 수 없고 민심을 온전히 담아내기도 어려울 것이다.
새로 임명된 비서실장이 인사비서관 등 새로 꾸려지는 인사라인과 인사 추천, 검증 과정을 한 번 조망해 보는 건 어떨까.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인선에 조언할 수 있고, 챙기지 못하는 인선의 방향타를 잡는 사람이 비서실장이다. 윤 대통령이 ‘이념 패거리 카르텔’ 타파를 강조했지만, 변화한 인선으로 3년 차 실력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상대를 적으로 돌린 전 정부 ‘적폐청산’과 비슷하게 해석될지도 모를 일이다.
장관석 정치부 차장 j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