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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청춘이지YO!” 평균 88세 래퍼들의 유쾌한 반란

입력 | 2024-01-09 03:00:00

칠곡군의 치매 예방 프로그램
13인조 어르신 래퍼 그룹 결성… 올해 첫 정규 과정에 150명 몰려
“랩 외우고 춤추면서 삶에 활력… 지역 축제서 노래하는 게 목표”



3일 경북 칠곡군 왜관읍 섬김주간힐링보호센터에서 13인조 혼성 래퍼 그룹 ‘우리는 청춘이다’가 랩 공연을 펼치고 있다. 칠곡군 제공


“아직 나는 청춘이다. 나는 백 살 끄떡없네!”

3일 경북 칠곡군 왜관읍 섬김주간힐링보호센터. 펑퍼짐한 상의에 비스듬히 걸쳐 쓴 야구모자로 한껏 멋을 낸 송석준 할아버지(95)가 어깨를 들썩이며 능숙하게 랩을 뱉었다. 송 할아버지는 지난해 11월 섬김주간힐링보호센터 소속 어르신들이 결성한 13인조 혼성 래퍼 그룹 ‘우리는 청춘이다’의 리더다. 할머니 10명과 할아버지 3명으로 구성된 멤버들의 평균 연령은 88세. 치매 예방을 위해 랩 공부를 시작한 어르신들은 이날 특별공연 무대 위에서 힙합 가수들이 내뱉는 라임(각운이나 음절 수를 맞춰 리듬감을 살리는 것)과 견줘도 손색없는 랩을 선보이며 흥을 한껏 돋웠다.

칠곡군에 전국 처음으로 랩을 활용한 치매 예방 프로그램이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섬김주간힐링보호센터에서는 지난해 11월부터 소속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치매 예방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랩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센터 측이 랩 교실을 마련한 것은 지난해 10월 원조 어르신 힙합 그룹 ‘수니와 칠공주’가 센터를 찾아 랩 공연을 펼친 것이 계기가 됐다. 수니와 칠공주는 칠곡에서 팔순이 다 돼 한글을 깨친 후 컴퓨터용 폰트(글씨체)까지 제작해 화제를 모았던 할머니들로 구성된 7인조 힙합 그룹이다.

무대 위에서 수니와 칠공주가 부르는 랩을 흥겹게 따라 하던 어르신들은 자신들도 랩을 배우고 싶다며 센터 측에 요청했다. 장복순 섬김주간힐링보호센터장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자문을 한 결과 랩 가사를 외우고 간단한 동작으로 춤을 추는 것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을 받아 랩 교실을 개설하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임시 교육 과정 수준으로 개설했다. 그런데 어르신들이 점차 관심을 가지면서 센터 측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 어르신들이 교육 과정에서 입을 힙합 의상과 모자를 비롯해 액세서리까지 마련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송 할아버지가 주축이 된 13인조 혼성 래퍼 그룹 우리는 청춘이다가 결성됐다. 송 할아버지는 “일반적인 노래보다 빠른 속도로 가사를 뱉어야 하는 랩이 당연히 익숙하지는 않지만 틀리면서 웃고 떠들다 보면 세상 근심이 사라지고 활력도 생긴다. 열심히 연습해 지역 축제에 초청 가수로 출연하는 것이 목표다”라고 말했다.

센터는 어르신들이 큰 호응을 보이자 올해부터는 아예 정규 교육 과정으로 랩 교실을 운영하기로 했다. 센터를 이용하는 어르신 150명이 일주일에 두 차례 랩을 배우고 있다. 앞으로 많은 어르신이 쉽게 배우고 따라 할 수 있는 랩 곡도 만들 계획이다.

장 센터장은 “랩을 배우면서 몸도 마음도 젊어졌다는 어르신들의 호응에 직원들도 큰 힘을 얻고 있다. 젊은 세대와 소통해 사회적 고립감을 해소하고 노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랩이 많은 어르신에게 보급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