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웃고 있는 축구대표팀 주장 손흥민(오른쪽). 한국은 손흥민을 앞세워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에 도전한다. 뉴시스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카타르에서 열리는 2023 아시안컵에서 15일 바레인을 상대로 E조 첫 경기를 치른다. 아시안컵은 한국은 물론이고 이란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시아 최강을 자부하는 나라들이 모두 출전해 명실상부한 아시아의 왕좌를 다투는 경기다. 여기에 호주까지 가세해 각축을 벌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여러 사정으로 1년 연기돼 열린다.
월드컵에서 아시아 국가들의 선전이 이어지면서 아시아 축구의 위상도 많이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흐름 속에 아시아 최강임을 확인하고자 하는 국가들 간의 라이벌 의식도 커지고 있다. 아시안컵은 이들이 직접 마주치는 대회로서 과거에 비해 축구팬들의 관심을 점점 더 끌어모으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으로서는 최근 6연승을 달리며 상승세를 타고 있지만 이 대회를 통해 더 냉정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한국이 우승하려면 대회 과정에서 이란 일본 등 전통의 라이벌들과 치열한 대결을 펼쳐야 한다. 아시안컵은 특히 한국과 이란의 질긴 악연으로도 유명한 대회다. 한국과 이란은 아시안컵 8강전에서만 5번이나 연속으로 마주친 기이한 인연이 있다.
한국은 1996년 대회 8강전에서 이란에 2-6으로 대패했다. 이 여파로 박종환 감독이 물러났다. 2000년 대회 8강전에서는 연장전 끝에 2-1로 이겼다. 그러나 2004년 대회 8강에서는 박지성 안정환 이영표 이운재 등 2002 한일 월드컵 스타들이 대거 출동하고도 난타전 끝에 이란에 3-4로 졌다. 2007년 대회 8강에서는 연장전까지 0-0으로 비긴 뒤 한국이 승부차기로 이겼다. 2011년 대회 8강에서는 또다시 한국이 연장 혈투 끝에 1-0으로 이겼다.
5개 대회 연속 8강전에서 만난 것도 특별한 인연이지만 8강 이후의 상황도 흥미롭다. 한국과 이란 어느 쪽이든 8강전에서 승리한 팀은 4강전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 5번의 만남에서 4강전에 올랐던 팀은 한국이든 이란이든 모두 4강전에서 상대 팀에 패했다. 이는 8강전에서 총력전을 펼치며 모든 것을 쏟아부은 탓에 양 팀 모두 체력 고갈 등 여러 후유증을 겪은 탓이 컸다. 그만큼 한국과 이란은 서로를 의식하며 격렬한 대결을 벌여 왔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E조, 이란은 C조에 속해 있다. 상대적인 전력상 한국과 이란이 각 조 1위로 16강전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어 16강전에서도 각각 승리하면 이번에도 한국과 이란이 8강에서 만나게 된다.
손흥민(토트넘), 황희찬(울버햄프턴),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김민재(뮌헨) 등 세계적 스타들을 보유한 한국은 역대 최강 전력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최선을 다한다면 승패를 떠나 그 자체로 박수를 받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팬들의 열망이 크고 민감한 대회일수록 그 후유증도 커진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2007년 아시안컵 대회 기간 중 음주 파동을 일으켜 무더기 중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 이운재 이동국 등 당대의 스타들이 대표 선수 자격정지 1년의 징계를 받았고 그 후유증은 크고 오래갔다. 단지 승패의 문제가 아니라 대표 선수로서의 자세와 태도가 문제가 됐다. 팬들의 우승 소망이 크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원하는 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일 것이다.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blue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