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핵무기 지속 생산 지시 의미는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김 위원장이 이렇게 위협하는 속내에는 내부 결속 및 남남 갈등, 한미동맹 이완 등 다목적 포석이 깔린 것으로 군과 정보 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김정은이 8차 당 대회 2년여 만에 또다시 주요 국방 과업을 밝힌 것은 올해를 대남·대미 핵 고도화 완성 원년으로 삼겠다는 의도”라고 했다.》
● 2021년 밝힌 ‘전략무기 목표’ 속속 달성
김 위원장은 2021년 1월 8차 당 대회에서 ‘국방공업 발전 및 무기체계 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집권 이후 처음으로 국방력 강화를 위한 확실한 ‘가이드라인’을 공개한 것. 그 몇 달 뒤엔 이른바 ‘전략무기 부문 최우선 5대 과업’도 제시했다. △극초음속무기 개발 △초대형 핵탄두 생산 △1만5000km 사정권 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명중률 제고 △수중 및 지상 고체엔진 ICBM 개발 △핵잠수함과 수중 발사 핵전략무기 보유 등이 그 과업들이었다. 이어 2022년 3월엔 ‘5대 중점 목표’라는 용어와 함께 ‘군사정찰위성 발사’가 그 가운데 하나라고 북한 매체들이 보도했다. 군 소식통은 “현재를 기준으로 보면 핵잠 등만 제외한 대부분 주요 과제는 달성됐거나 이미 상당 수준 진전됐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극초음속미사일(화성-8형)은 2022년 1월 3차 시험발사에서 마하 10(음속의 10배) 안팎의 속도로 비행했다. 마하 5 이상의 극초음속 비행 능력을 실제 입증한 것. 당시 북한은 “최종 시험발사가 성공했다”고 밝혀 전력화가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지난해 7월과 12월에는 고체연료 ICBM인 ‘화성-18형’이 “목표 수역에 정확히 탄착했다”고 북한 매체가 발표했다. 한미 당국은 북한이 ICBM 명중률 제고 등 지상 고체엔진 ICBM 개발을 사실상 끝낸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또 지난해 11월에는 군사정찰위성(만리경-1호)도 발사했다.
북한은 핵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9월 진수한 전술핵공격잠수함(김군옥영웅함)을 ‘핵잠수함’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를 두고 향후 핵추진잠수함 개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한 것이란 평가가 나왔다.
군 당국자는 “북한은 7차 핵실험을 ‘최종 카드’로 아껴뒀다가 미 대선 등 결정적 시기에 강행함으로써 5대 목표의 완성을 선언할 수 있다”고 했다. 북한이 지난해부터 함경북도 풍계리 핵실험장 복원 공사를 장기간 지속 중인 것도 더 강력한 초대형 핵탄두나 여러 발의 전술핵을 이용한 핵실험의 준비 정황일 수 있다는 것. 북한이 초대형 핵탄두 시험을 한다면 그 위력은 6차(50∼60kt·킬로톤·1kt은 TNT 1000t의 파괴력) 때의 2∼3배에 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 핵탄두 최소 150기 이상 보유
김 위원장은 지난해 말 당 전원회의에서도 핵무력 증강을 최우선으로 한 주요 국방 목표를 제시했다. 그 일환으로 ‘2024년도 핵무기 생산 계획’ 등 핵무기 생산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토대 구축을 강조했다. 정부 소식통은 “이미 확보한 핵물질로 더 많은 핵탄두를 만드는 동시에 무기급 핵물질도 최대한 뽑아내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지난해 6월 발표한 자료에서 북한이 30기가량의 핵탄두를 제작했고, 50∼70기 분량의 핵물질을 보유 중인 것으로 추정했다. 또 영변 원자로에선 연간 6kg의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하고, 영변과 강선 등의 우라늄 농축 시설에서 연간 80∼100kg의 고농축우라늄(HEU)을 생산 중인 것으로 한미 당국은 보고 있다.
군 관계자는 “북한은 ‘사실상의 핵보유국’인 인도, 파키스탄에 버금가는 최소 150기 이상의 핵탄두 보유를 목표로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량의 전략·전술 핵탄두를 한국과 미 본토를 겨냥한 미사일에 장착 배치하는 한편 핵무기고를 최대한 비축하면 미국의 확장억제(핵우산)도 무력화할 수 있다는 게 김 위원장의 판단일 수 있다는 의미다.
북한이 향후 화성-18형의 다탄두 ICBM 능력을 과시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 주요 핵강국의 ICBM은 모두 여러 개의 탄두를 싣고 있다. 1발의 ICBM으로 복수의 표적을 핵으로 초토화할 수 있다는 것. 북한이 워싱턴과 뉴욕을 동시에 핵으로 때릴 수 있는 다탄두 ICBM을 갖게 될 경우 미국의 확장억제는 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이 ‘함선공업혁명’을 통한 해군의 수중 및 수상 전력 제고를 언급한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지난해 9월 진수한 전술핵공격잠수함의 전력화 및 추가 건조(개량)와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시험발사 등을 서두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잠수함 함장을 지낸 문근식 한양대 특임교수는 “핵 장착 SLBM을 탑재한 북한의 잠수함은 기습 핵 공격에 최적화된 무기”라며 “김정은이 핵무력 고도화에 수중 전력을 최대한 활용하라고 주문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김 위원장이 각종 무인무장장비와 전자전 수단의 개발 생산을 강조한 것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및 한미 첨단무기·지휘통신체계를 겨냥한 재밍(전파 교란) 관련 무기의 성능을 더 고도화하겠다는 의미로 군은 보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7월 열병식 때 신형 무인기(새별-4·9형)를 처음 공개하며 그 가능성을 더욱 높였다.
● 서해 NLL 포격, 중대 도발 ‘전주곡’
김 위원장이 전례 없는 강도로 협박 발언을 쏟아낸 만큼 올해 한미를 겨냥한 중대 도발이 잇따를 가능성도 크다. 한국을 ‘민족, 동족이 아닌 적대국’으로 규정한 북한이 최근 사흘 연속(5∼7일) 서북도서와 인접한 서해 북방한계선(NLL) 이북 해상 완충구역에 포격 도발을 감행한 것을 그 ‘신호탄’으로 군은 보고 있다.
군 관계자는 “김정은이 복구 작업이 진행 중인 최전방 감시초소(GP) 일대의 군사분계선(MDL)을 콕 찍어 확전 가능성까지 위협한 점에서 고강도 국지 도발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4월 총선과 11월 미 대선을 겨냥해 MDL과 서해 NLL 일대에서 우리 영토와 군 장병을 직접 겨냥한 기습 도발이나 7차 핵실험으로 긴장을 역대급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3월 한미 연합훈련을 기해 미사일과 무인기 도발, 한국의 금융·전산망 등을 겨냥한 대규모 사이버 공격 등 파상 공세에 나설 개연성도 있다. 주일미군과 괌 기지, 미 본토를 핵으로 때릴 수 있는 중장거리미사일도 더 자주, 더 많이 발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말 당 전원회의에서 박정천 당 군정지도부장이 ‘군부 1인자’(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로 복귀한 것도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박정천은 리영길 총참모장과 함께 2015년 DMZ 목함지뢰 도발을 주도한 바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정은이 측근들에게 ‘내년 초 남한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데 이어 대남 도발을 지휘한 강경파들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무력 도발의 유력한 징후”라고 말했다. 군 당국자는 “과거 도발 사례와 현재 지속적으로 포착·수집되는 대북 첩보들을 토대로 다양한 도발 시나리오를 상정해 대응 방안을 수시로 업데이트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