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석학 인터뷰]〈4〉 양안관계 전문가 자오춘산 대만 단장대 명예교수 대만 젊은층 평화보다 ‘경제’ 관심… 차이잉원 압승한 4년 전과 달라 中, 내부 불만 재우려 강경 가능성… 대만 차기 정부, 對中 대화 늘려야 美-中 전략 패권경쟁은 계속돼… 양안 충돌땐 주한미군까지 영향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자오춘산 대만 단장대 대륙연구소 명예교수가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미중 대리전 양상으로 13일 치러지는 대만 총통 선거와 관련해 “중국이 경기 둔화와 내부 불만을 다스리기 위해서라도 새 정부 길들이기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그럴수록 당선인은 중국을 자극하며 갈등 수위를 높여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줌’ 화상 캡처
“중국의 경제 성장이 둔화된 현 시점에서 중국을 지나치게 자극하면 대만 안보에 좋지 않다. 차기 대만 총통은 중국과의 대화를 늘려야 하며 특히 민간 교류 확대가 필수적이다.”
대만의 원로 정치학자이며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의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자오춘산(趙春山·78) 단장대 대륙연구소 명예교수가 지난해 12월 26일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13일 실시될 총통 선거 결과가 국제 정세에 미칠 영향을 진단하며 한 말이다.
대만을 포함해 올해 한국, 미국, 인도, 러시아, 이란, 인도네시아, 멕시코 등 세계 곳곳에서는 잇따라 대선과 총선이 치러진다. 대만 대선 격인 총통 선거는 이 ‘슈퍼 선거의 해’에서 주요국 첫 타자일 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 양상을 띠며, 한반도 등 국제 정세에 미칠 영향도 커 그 어떤 선거보다 많은 관심을 모은다.
자오 교수는 1946년 중국 본토에서 태어났다. 3년 후 중국공산당과의 내전에서 패한 국민당이 본토에서 대만으로 패퇴할 때 부모를 따라 대만으로 넘어왔다. 국립정치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따고 모교 교수로 재직했고 중국공산당의 정치 체제 및 대외 정책 등을 집중 연구했다. 국민당 소속 마잉주(馬英九) 전 총통,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에게 양안 관계 전략 등을 조언했다. 국민당계 학자로 꼽히지만 민진당 인사들과도 교분이 두텁다.
지난해 2월 중국 베이징에서 권력 서열 4위 왕후닝(王滬寧)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서기처 서기를 접견할 정도로 중국 내 인맥도 탄탄하다. 그의 제자인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가 인터뷰를 통역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선거가 코앞이지만 승자 예측이 쉽지 않다.
“1996년 대만 총통 선거에 직선제가 도입된 후 가장 치열한 접전이 펼쳐지고 있다. 라이 후보와 허우 후보 중 누가 승자가 되더라도 득표율 격차는 3∼5%포인트, 표 차이는 50만 표 내외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 4년 전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은 57.2%를 득표해 상대 후보와의 격차가 18.6%포인트(약 265만 표)에 달했다. 이런 일방적인 상황이 나타나진 않을 것이다.
―젊은 유권자의 관심이 경제 의제로 옮겨간 이유는 무엇인가.
“차이 총통의 집권 8년간 중국과의 갈등이 고조된 와중에 경제 성장까지 둔화해 민진당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유권자가 늘었다. 8년간 실질임금은 사실상 감소했는데 집값은 더 오르고 취업난 또한 상당하다. 대만의 PIR(Price Income Ratio·소득 대비 주택가격 배율)은 20이 넘는다. 근로자가 20년 동안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월급을 모두 모아야 겨우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인지라 현재 지지율에서 앞서는 라이 후보가 새 총통이 되더라도 대선과 같은 날 치러지는 입법원(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국민당이 제1당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국민당 또한 압도적 격차로 1당이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할 새 총통의 최우선 과제는 무엇일까.
“대선과 총선 모두 접전 양상인 만큼 특정 후보와 정당의 일방 노선 추구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새 총통의 최우선 과제는 역시 분열 해소가 돼야 한다. 대만 내부의 반대파도 포용하고 차이 총통 집권 후 8년간 중단된 중국과의 대화 창구도 복원해야 한다. 무엇보다 경제난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이 필요하다. 차이 총통은 4년 전 대선에서 역대 최다 득표 및 최다 격차로 압승했기에 반중 정책을 펼 명분을 보유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세 후보의 대결로 누가 승리해도 과반 득표가 어려운 만큼 승자가 ‘일방통행’을 고집하면 정당성 논란이 뒤따를 것이다.
―일각에선 “대만은 중국의 일부가 아니다”라고 발언한 라이 후보가 집권하면 중국이 대만에 대한 군사 행동에 나설 것으로 본다.
“중국이 일정 부분 군사력을 과시하는 방식으로 새 정부 길들이기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중국 경제가 좋을 때는 대만에 대한 중국의 위협 강도가 오히려 낮았지만 현재 부동산 시장 부실 등으로 중국의 경기 둔화가 장기화하면서 내부 불만이 적지 않다. 이 동요를 다스리기 위해서라도 중국공산당이 대만에 대한 강경책을 펼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런 중국을 자극해선 안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째로 접어들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 또한 교착 국면에 빠지는 양상이다. 2개의 전쟁이 언제 어디로 확산될지 모르고, 다른 곳에서도 국지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이렇듯 국제 정세가 불안한 상황에서 군사력으로 열세인 대만이 중국과의 갈등 수위를 높이기보다 현상유지에 치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만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꼽히는 것이 늘 마음이 편하지 않다.”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재집권할 가능성이 있다.
“당초 트럼프 행정부 당시 미중 무역 갈등이 촉발된 것이다. 그렇기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에 복귀한다면 조 바이든 행정부에 이어 패권 경쟁은 계속될 것이다. 전술적인 측면에서는 양국 관계가 상당한 변화를 맞을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상대국 정상과의 일대일 담판을 선호하므로 동맹을 규합해 세를 불리는 데 치중한 바이든 대통령과 큰 차이가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은 물론이고 미국의 동맹까지 상대해야 하는 현재보다 트럼프 전 대통령 한 명만 상대하면 되니 편하다고 여길 수 있다. 다만 그가 워낙 즉흥적이고 예측이 쉽지 않은 인물인 만큼 정책 불확실성은 커질 것이다. 대만도 쉽게 유불리를 진단하기 어려울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만을 중국에 맞설 카드로 이용할지, 대만 군사 지원에 드는 비용을 부담스러워할지 속단하기 어렵다. 미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느냐가 13일 총통 선거의 결과보다 양안 관계에 미칠 파급력이 크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한국 또한 대만 못지않게 고민이 많다.
“한국의 상황이 대만보다 훨씬 양호하다. 한국도 북한을 다루기 위해 중국이 필요하지만 중국 또한 북한과의 관계 정립에 한국을 지렛대로 쓰려 한다.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않으면 한국과 더 밀착할 수 있다’는 식으로 북한을 압박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이 반도체 강국이라는 점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독자적으로 주권과 국익을 수호할 여지를 준다. 다만 중국이 대만에 대한 군사 행동에 나서면 미국은 주한미군이나 주일미군을 활용해 억지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만큼 한국 또한 양안 갈등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형편이다.”
―인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의 발전에도 왜 세계 분쟁은 더 늘어날까.
“물질 문명의 진보 속도를 정신 문명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이 와중에 기후변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같은 전염병 등 전 세계가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문제 또한 속속 생겨나고 있다. 인류 모두가 이 문제를 발생시킨 주범이고 누구 하나 그 원죄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런데도 서로 자신의 잘못은 없다며 남 탓만 하는 것이 정신 문명이 진보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자오춘산(趙山) 대만 단장대 대륙연구소 명예교수1946년 중국 광시성 구이린 출생(본적 산시성)
1949년 대만행(국립정치대 정치학 박사, 미국 조지타운대 박사 수료)
1972~2002년 국립정치대 교수
2002~2017년 단장대 교수
2008~2016년 마잉주 전 총통 고문
2017년~현재 단장대 대륙연구소 명예교수
중국공산당의 정치 체제, 주변국 관계, 대외 정책 등에 관한 여러 연구
하정민 기자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