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가 중대재해로 다치거나 숨졌을 경우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이달 27일부터 예정대로 근로자 50인 미만(5~49인) 영세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 사이에서 “현실적으로 대비할 여력이 없다”는 하소연이 나왔음에도 여야의 개정안 논의가 평행선을 달리면서 9일 본회의 처리가 불발됐기 때문이다.
● 2년 추가 유예안 본회의 통과 실패
중대재해법은 사망자 1명 이상 또는 6개월 이상 치료받아야 하는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했을 때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면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이다.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됐는데 소규모 기업의 경영 여건을 감안해 5~49인 사업장에는 1년간 시행을 유예하기로 했다. 하지만 중소기업 사이에서 “준비가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여야는 법 확대 적용 시점을 유예하는 방안을 논의해 왔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 등이 발의한 개정안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법 적용을 2026년 1월 27일까지 2년 더 유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중소기업들 “사장 구속되면 폐업해야”
2022년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이달 1일까지 사업주 총 12명이 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모두 1심에서 유죄가 인정됐다. 처벌 사례가 나오면서 일정 규모 이상인 기업들은 안전관리자를 임명하고 현장 안전조치를 강화하고 있지만, 인력 확보가 어려운 중소기업들은 제대로 대비도 못한 채 한숨만 내쉬는 상황이다.수도권에서 의류 업체를 운영하는 한 기업인은 “중소기업은 일반 직원도 구하기 어려운데 안전 관리 인력 채용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주변에 물어보니 임시방편으로 기존 인력을 교육시켜 안전관리자로 임명하겠다는 말이 나온다”고 했다. 하지만 안전 관련 자격증이 없는 경우 법적으로 안전관리자로 인정받기 어렵다.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 6단체는 9일 입장문을 내고 “유예 법안이 통과되지 못한 것에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며 “83만이 넘는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들의 절박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논의조차 하지 않은 것은 민생을 외면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또 “소규모 사업장의 절박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 27일 법 시행 전까지 법안을 통과시켜주기를 다시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이날 관계부처 합동으로 낸 입장문에서 “정부와 경제단체 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적극적 논의를 하지 않는 것은 영세 중소기업의 현실적 어려움을 외면하는 것”이라며 “현장의 절박한 호소를 고려해 법 전면시행 전까지 적극적인 개정안 논의와 신속한 입법 처리를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했다.
반면 노동계는 추가 유예 없이 법을 시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그동안 정부와 경제 단체 등이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유예를 주장한 것은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을 죽음의 위험에 방치한 채 사업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말”이라고 주장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정서영 기자 cero@donga.com
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