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업공정유통법’ 논란 ‘검정고무신’ 사건 계기로 비용 전가 금지 추진에 “웹툰 산업 발전 저해” 우려… “신인 작가들에 불리” 지적도 출협 “입법 창작자, 독자에 이익” 작가 “권리 보호 위해 필요”… 전문가들 “사회적 합의 거쳐야”
1990년대 인기 만화 ‘검정고무신’를 만든 고 이우영 작가의 동생 이우진 작가가 지난해 3월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지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스1
● “초반 회차 무료 공개 막힐 수 있어”
이 작가의 죽음을 계기로 신인 창작자에게 저작권을 영구 양도받는 출판계 계약 관행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결국 정부와 국회가 ‘제2의 검정고무신’을 막겠다며 입법을 추진했다. ‘검정고무신법’으로 불리는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은 지난해 3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이호재 문화부 기자
특히 웹툰계에선 법안에서 불공정행위로 규정하는 ‘판매촉진비 및 가격할인 비용 전가’ 규정이 웹툰 성공에 상당한 역할을 한 사업모델을 없앨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초반 회차를 무료로 공개해 독자들의 흥미를 끈 뒤 뒷이야기의 유료 결제를 유도하는 웹툰 플랫폼의 ‘기다리면 무료’, ‘매일 열 시 무료’는 작가에게 수익 배분이 이뤄지지 않아 불공정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범강 한국웹툰산업협회장은 “한국 웹툰이 세계 시장에 진출하려는 때에 부적절한 규제가 시장 확대를 막을 수 있다”며 “법안의 입법 취지는 좋지만 선의가 왜곡돼 업계에 부정적인 영향만 끼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특히 콘텐츠 제작사(CP)들은 법 규정 중 ‘문화상품을 납품한 후에 해당 문화상품의 수정·보완 또는 재작업을 요구하면서 이에 소용되는 비용을 보상하지 아니하는 행위’를 금지한 데 대해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CP 관계자는 “웹툰 제작 과정에서 작업물의 수정을 요청하는 일은 항상 발생한다. 수정 비용을 일일이 지급해야 하면 작품 수정 자체를 요청하지 않아 작품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 “창작자 보호 위해 입법 필요”
특히 출협은 초반 회차 무료 공개가 온라인 플랫폼의 배만 불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플랫폼이 부담해야 할 마케팅 비용을 작가가 떠안는다는 것이다. 박용수 출협 전자출판·정책 담당 상무이사는 “초반 무료 공개로 플랫폼에 유입되는 독자가 증가해 플랫폼의 광고 수익이 늘었다. 하지만 정작 유료 결제는 늘지 않아 작가가 이득을 보지 못하는 구조”라며 “과거 웹툰 플랫폼들이 독자에게 무료로 일부 작품을 제공하면서 작가에게 이를 금전적으로 보상한 적이 있다. 법을 통해 현재의 기형적인 구조를 정상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전문가들 “비용 분담 등 사회적 합의 필요”
현재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은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검정고무신 사건을 계기로 지난해 통과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문체위로 법안이 환송됐다. 법사위 논의 단계에서 금지행위로 규정한 조항들이 공정거래법에서 규율하는 불공정 거래행위와 겹쳐 중복 규제라는 지적이 나온 데 따른 것이다. 방송사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만큼 법안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해당 법안이 다양한 규제를 포괄하고 있는 만큼 공정거래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련 부처 간 조정도 필요하다. 국무조정실이 부처 간 업무 조정을 하고 있는데, 부처 간 협의를 거쳐 세부 조문을 수정할 예정이다. 윤양수 문체부 콘텐츠정책국장은 “법안의 취지를 살리면서도 다양한 우려를 반영하겠다. 법안이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창작자 보호 법안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융희 문화연구자(전 세종사이버대 만화웹툰창작과 겸임교수)는 “정부 부처가 웹툰계와 협의를 통해 방향성을 정하고 반발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초반 회차 무료 공개에 드는 비용을 플랫폼과 CP가 분담하도록 정부가 유도하려면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창완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텍 교수는 “창작자뿐 아니라 플랫폼 등 웹툰계 전체의 목소리를 들어 법 조항을 세밀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호재 문화부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