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군부 지도자 회의에 참석한 가셈 솔레이마니 당시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주변국의 시아파 무장단체를 후원하며 이란의 해외 영향력 확대에 앞장선 그는 2020년 1월 이라크 바그다드공항에서 미군에 암살됐다.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3일 그의 묘지 인근에서 폭탄 테러를 자행해 시아파와 수니파의 해묵은 갈등을 고조시켰다. 사진 출처 이란 최고지도자실 홈페이지·AP 뉴시스
하정민 국제부 차장
현재 양측은 치열한 ‘체제 경쟁’을 벌인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 수니파 왕정국은 오일머니를 이용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 세속주의 사회’를 지향한다.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왕정을 몰아낸 이란은 ‘풍족하진 않아도 이슬람 교리를 따르는 신정일치 국가가 최고’란 자부심으로 산다. 무함마드의 후계자 경쟁 때 수니파와 시아파가 각각 ‘영향력’과 ‘정통성’을 내세웠던 것과 비슷하다.
2020년 1월 미군의 공개 살상으로 숨진 가셈 솔레이마니 전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은 이 해외 무장세력 지원을 담당한 이란 최고위 인사다. 혁명수비대 내에서도 해외 작전과 특수전을 담당해 최정예로 불리는 쿠드스 대원들은 오합지졸 상태인 곳곳의 시아파 민병대를 체계적으로 교육했다. 미사일, 무인기 등도 보급해 정규군 수준으로 키웠다.
이를 통해 이란은 시리아 레바논 예멘 이라크와 자국을 잇는 거대한 ‘시아파 벨트’를 구축했다. 주변국을 사실상 위성국으로 만들었기에 굳이 자국군을 동원하지 않고서도 수니파 왕정국, 이스라엘, 미국 등을 군사적으로 압박할 수 있었다. 솔레이마니가 고국이 아닌 이라크 바그다드공항에서 숨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2014, 2015년 거듭된 테러로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3일 솔레이마니의 4주기 추도식장에서 테러를 저질렀다. 시아파 세력 확장에 평생을 바친 솔레이마니의 상징성을 감안해 의도적으로 장소를 골랐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잊혀진 존재로 전락한 IS 입장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존재감을 과시해야 재기를 도모할 수 있다. 이에 수니파가 눈엣가시로 삼던 솔레이마니의 묘지 인근에서 폭탄을 터뜨려 건재를 알리려 했다는 의미다.
IS만 사자(死者)의 상징성을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이란과 시아파 무장단체 또한 ‘순교자’로 추앙받는 솔레이마니의 후광이 절실하다. 이란은 만성 경제난, 히잡 의문사 규탄 시위 등 문제가 산적해 있다. 시아파 무장단체는 이란의 지원이 없으면 존립 자체가 어렵다. 죽은 솔레이마니를 내세워야만 내부 불만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