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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한동훈의 지적 소양이 멋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입력 | 2024-01-09 23:51:00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들고 출장 가고 예비 고교생에게 ‘모비딕’ 선물한 韓,
‘동료 시민’이 멋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아래로부터의 정당 정치부터 구현해야



송평인 논설위원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법무부 장관 재임 마지막 날 한 예비 고교생에게 미국 소설가 허먼 멜빌의 ‘모비딕’을 선물했다. 그는 장관으로 임명되기 전 국회 인사청문회에 제출한 서면질의 답변서에서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으로 모비딕을 꼽았다.

모비딕을 최고로 꼽았다니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난 모비딕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다. 모비딕은 백과사전 같은 장황한 고래 설명 반, 고래 잡는 얘기 반이다. 그래서 모비딕을 읽을 때 고래 설명 부분은 건너뛰면서 읽지 않으면 잘 읽히지 않는다. 한 위원장이 그 책을 어느 나이에 읽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요새처럼 책 안 읽는 시대에 예비 교교생에게 아무런 설명 없이 모비딕 같은 책을 선물하는 게 선물받는 사람보다 선물하는 사람의 입장이 우선인 것 같은 느낌은 들었다.

한 위원장은 법무부 장관 시절인 올 3월 유럽 출장을 가면서 손에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번역서를 들고 공항에 나타났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책을 내는 곽작가가 친한 후배다. 그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그리스 원문과 영어 번역서를 참조하면서 읽었다. 그의 말인즉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한국 번역서든 영어 번역서든 그냥 읽는다고 읽히는 책이 아니다. 일단 고대 그리스와 주변 도시들의 지도가 머릿속에 그려져야 하고 각 도시들의 관계, 그 시대의 특수한 관행들이 이해돼야 읽힌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위원장의 독후감이 궁금하지만 그것까지는 알 수가 없다.

‘정치인’ 한동훈이 요새 트레이드마크처럼 쓰고 있는 말이 ‘동료 시민’이다. 미국 정치인들이 연설에서 흔히 쓰는 ‘마이 펠로 시티즌스(my fellow citizens)’를 직역한 것이다. 우리 말에는 이런 표현이 없다.

서구의 중세 도시와 관련해 ‘도시의 공기는 자유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 농촌을 중심으로 주종(主從)관계가 지배하던 중세에 도시에서 처음 상인과 수공업자를 중심으로 동료 의식에 기초한 자유가 싹트기 시작했다. 그것이 자본주의를 일으키고 인문주의를 낳고 종교개혁을 낳고 시민혁명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런 역사로부터 행정구역상의 시민이 아닌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이란 뜻의 시민이란 말이 생겼다. 이 시민은 런던 시민, 파리 시민이기도 하면서 영국 시민, 프랑스 시민이기도 하고 심지어 세계 시민이기도 하다.

우리는 왕조의 백성, 즉 신민(臣民)에서 바로 민주국가의 국민으로 건너왔다. 우리에게도 3·1운동, 4·19시위 같은 게 있지만 시민으로서가 아니라 국민으로서 그런 일을 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한국민이나 서울 시민은 자연스럽지만 한국 시민은 그렇지 않다.

시대를 앞서가는 멋은 처음에는 거슬리지만 점차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동료 시민’이란 말은 여전히 들을 때마다 귀에 거슬리지만 계속 뇌리에 남는 것도 사실이다. 그 말이 새로운 시대 정신의 구호가 되려면 한 위원장이 중앙당 위주에서 벗어나 아래로부터의 정당 정치를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보수 정당에 부족한 것이 아래로부터 동료 의식에 의한 정치다. 그러나 아래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진보 정당에서 먼저 동료 시민적인 민주주의에 관심을 갖고 깨시민(깨어 있는 시민)을 외쳤지만 결국 개딸로 끝나가고 있다. 한 위원장이 아스팔트 보수와 유튜브 보수의 함정을 피하면서 보수 정당의 하부구조를 바꿔갈 수 있을지 지켜보겠다.

한 위원장은 모비딕에서 선장 에이허브보다는 1등 항해사 스타벅에 더 호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에이허브는 무모했고 스타벅은 신중했다(커피브랜드 스타벅스의 스타벅이 여기서 유래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고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 내 배에 태우지 않겠다’는 스타벅의 말을 좋아하는 구절로 꼽았다.

한 위원장이 ‘조선 제일검’으로 불리긴 했지만 옛 명(名)검사들처럼 끝까지 신중했는지 의문을 갖고 있다. 사법농단 수사는 유례를 찾기 힘든 무모한 수사였다. 스타벅은 신중했지만 막판에는 에이허브가 몰고온 집단 광기에 휩쓸려 모비딕을 잡는 데 누구보다 앞장섰다. 검찰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에이허브였고 한 위원장은 스타벅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정치에서는 그래선 안 된다. 에이허브의 무모한 통치를 끝장내는 스타벅이 돼야 보수 정당이란 배는 국민이라는 고래에 의한 침몰을 면할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