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어려움도 커” 유서 남겨 지인 “늘 밝고 봉사-기부 챙긴 분 딸 한달 치료비 수백만원 들어” 소아당뇨환자 4년새 26% 늘어… 전문가 “간병인 지원 등 확대를”
충남 태안에서 부부가 소아당뇨를 앓던 8세 딸과 함께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이 부부는 딸을 수개월간 치료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9일 태안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15분경 태안군의 한 주택가에서 남편 A 씨(45)와 아내 B 씨(38), 8세 딸이 숨져 있는 것을 경찰이 발견했다. 경찰은 이날 A 씨 모친으로부터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함께 잠들었던 가족들이 사라졌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집 앞에 있는 차량 안에서 A 씨 일가족을 발견했다.
● “기부까지 했던 가장” 지인들 충격
차량 안에서는 극단적 선택을 한 흔적과 A5용지 크기의 노트에 부부가 각각 쓴 2쪽 분량의 유서도 발견됐다. 남편 A 씨가 작성한 유서에는 “딸이 병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 경제적 어려움도 크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내 B 씨는 친정 식구들에게 “언니들에게 미안하다. 빨리 잊어달라. 장례는 우리 세 가족 합동장으로 부탁한다” 등의 내용을 작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A 씨 부부는 직장에서 퇴직한 뒤 2022년부터 최근까지 PC방을 운영해 왔다고 한다.
경찰은 부부가 딸과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 주변인 조사 등을 토대로 자세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사고 소식을 접한 지인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평소 쾌활한 성격이었던 A 씨가 봉사 활동뿐만 아니라 기부도 하며 주변을 잘 챙겨 왔기 때문이다. A 씨의 한 지인은 “자율방범대 소속으로 봉사 활동을 해왔던 A 씨는 지난해 말 대원들과 함께 성금 300만 원을 지역 면사무소에 기부하기도 했다”며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웠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A 씨의 다른 지인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A 씨 딸이 자주 아팠는데 8개월 전쯤 소아당뇨 진단을 받아 A 씨 부부가 많이 힘들어했다”면서 “수도권에 있는 병원을 정기적으로 다녔는데 한 달에 몇백만 원씩 들어간다는 얘기도 들었다”며 안타까워했다.
● “소아당뇨 치료 구조적 문제 해결해야”
전문가들은 소아당뇨를 앓는 아동에 대한 지원 부족 등 구조적 문제가 겹쳐 일어난 비극적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소아당뇨 환자는 매일 인슐린 투약을 위해 주사를 맞아야 한다. 유치원이나 초중고 보건교사가 대신 주사할 수 없어 가족이나 전문 간병인이 돌봐야 하는데 이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 전무한 게 현실이다.
윤건호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소아당뇨는 중증질환으로 인정받지 못해 진료비의 20∼60%를 환자가 내야 해 부담이 크다”며 “응급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지역에선 의사나 병원을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소아당뇨 환자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환자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인슐린을 거의 생성하지 못하는 19세 미만의 ‘1형 당뇨병’ 환자는 1만4480명에 달한다. 2018년(1만1473명)과 비교해 4년 새 26% 넘게 늘었다.
이같이 소아당뇨 환자가 늘어나자 보건복지부는 2월부터 소아당뇨 환자가 인슐린을 주입할 때 사용하는 인슐린 펌프의 건강보험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인슐린 펌프 지원 기준 금액은 기존 170만 원에서 최대 450만 원까지 늘어나고, 환자 본인 부담률은 기존 30%에서 10%로 낮아진다.
태안=이정훈 기자 jh89@donga.com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