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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은 한바탕 꿈… 짧은 잠 자고나면 죽음아, 넌 죽으리

입력 | 2024-01-11 03:00:00

[한시를 영화로 읊다]<73>병에 대처하는 자세



영화 ‘위트’에서 비비언 교수(에마 톰프슨)는 존 던의 시처럼 위트로 병의 고통을 이겨내고자 한다. HBO필름 제공


병이 육신을 괴롭힐 때 우리는 나에게 왜 이런 병이 찾아왔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마이크 니컬스 감독의 ‘위트’(2001년)에서 에마 톰프슨이 연기한 주인공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위트를 잃지 않는다. 고려시대 이규보(李奎報·1168∼1241)도 병에 대처하는 자세를 다음과 같이 재치 있게 표현한 바 있다.




시인은 평생 소갈병, 악성 종기, 수전증 등 수많은 병에 시달렸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던 셈인데 특히 눈병이 그를 끝까지 괴롭혔다(김용선 ‘생활인 이규보’). 수십 일 동안 고통이 가시지 않아 실명할까 걱정하기도 했다(‘痛左目累旬, 痛隙有作口吟’). 그럼에도 물에 떠내려가는 나무 허수아비 같은 육체(史記 ‘孟嘗君列傳’)가 병들어 고통받는다고 근심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삶과 죽음이란 그저 한바탕 꿈일 뿐이고 병은 하늘이 고된 삶을 안타까이 여겨 쉴 기회를 주는 것이란 생각에서다. 투병 중에도 애써 스스로를 위로하려는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다.

영화는 퓰리처상을 받은 마거릿 에드슨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감독과 주연배우가 함께 각본을 썼다. 주인공 비비언은 영문학 교수로 17세기 영시 전공자다. 비비언은 난소암 말기로 극심한 고통에 허덕이면서도 존 던의 시처럼 죽음 앞에서도 위트를 잃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고통과 죽음에 대한 자신의 두려움을 억누를 수 있는 것은 친절과 공감뿐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비비언은 던이 죽음을 읊은 “죽음아 뽐내지 마라, (중략) 짧은 한잠 자고 나면, 우리는 영원히 깨어나리./그리고 죽음은 더 이상 없으리, 죽음아, 너는 죽으리라”란 시구(‘거룩한 소네트’ 제10장)를 되새기며 죽음을 맞이한다. 시인은 자신에게 찾아온 이 ‘특별한 고통’(非常痛)을 도리어 축하할 만하다고 말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게 옛 시인의 말과 영화 속 위트가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