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적당히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잠도 잘 와서 좋다. 또 말문이 터져서 평소에 감정이 있던 사람과도 대화의 창이 열린다. 그래서 술을 통해서 인간관계가 더 좋아진다. 그러나 지나치면 사고가 난다. 인사불성이 되면 사람이 실수를 하게 된다. 선장은 절대로 술로 인해 인사불성이 되면 안 된다. 선장은 선박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적당히 취한 척할 뿐이지 절대로 선원들보다 먼저 취하면 안 된다고 배웠다. 나는 이런 바다의 가르침을 잘 따랐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소금구이 등 고기를 구워 먹을 때에는 뭐니 뭐니해도 우리나라 소주가 최고였다. 1982년 첫 배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있었다. 금주의 국가라서 아예 술을 살 수가 없었다. 궁하면 통하는 법. 마침 예인선에서 일하는 한국 선원들이 한국을 떠날 때 싣고 온 소주가 있다고 했다. 그 배에 숨어 들어가서 모르게 한 잔씩 했다. 맛이 너무 좋았다. 사우디에는 비알코올성 맥주라고 맛없는 맥주만 있었다. 밍밍했다. 고국 생각이 절로 났다.
술을 이용한 용인술도 있다. 뱃사람들은 화끈하다. 그래서 ‘돈내기’라는 것을 좋아한다. 주어진 일을 잘하면 어떤 대가를 주는 것이다. 이틀 내에 주어진 일을 마치면 선장이 위스키 한 병에 맥주 2박스를 준다고 선원들에게 약속한다. 별것은 아니지만 선원들은 힘을 내어 열심히 일한다. 성과를 내어 선장이 선물로 내어주는 위스키와 맥주로 선원들은 피로를 달랜다. 이에 질세라 기관장도 돈내기를 건다. 하루 이틀 사이에 끝내야 하는 화물창 청소를 할 때 이런 돈내기가 필요하다. 산더미 같던 일도 선원 20명이 합심하여 목적을 달성했다.
배에서는 탁구를 친다. 운동도 되고 단합도 되고 건강에도 좋다. 점심 식사 후 2시간 정도 탁구를 치고 나면 땀이 많이 난다. 게임을 마치고 마시는 찬 맥주 한 잔은 그렇게 시원하고 맛있을 수가 없다. 배에서 마시는 최고의 술맛이다. 이런 맛으로 배를 탔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