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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세상은 ‘아토초’ 시대인데[이기진 교수의 만만한 과학]

입력 | 2024-01-11 23:24:00

이기진 교수 그림


어둑한 새벽, 학교에 가기 위해 문을 열고 나서자 얼음을 깨문 것 같은 추위가 느껴진다. 학교는 겨울방학에 들어갔다. 학교 난방 시스템이 망가져 책상 아래 작은 히터에 의지하고 버텨보지만 춥다. 연구실에서 밤을 새운 대학원생들이 복도를 지나간다. 어떻게 이 밤을 지새웠을까?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기초과학이라 불리는 물리학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물리학은 “어디다 쓸 건데?!”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와는 거리를 둔 채 오랜 기간 대학이라는 ‘상아탑’ 안에서 발전해왔다. 코끼리는 죽을 때가 되면 자신들만 아는 코끼리 무덤으로 가고, 그곳에는 상아가 탑처럼 쌓이게 된다. 비록 몸은 썩어 없어지지만, 상아만은 마지막까지 남아 있다고 해서 상아탑이라고 불린다. 미래를 위한 귀한 지식이 축적된 곳이 대학이란 의미 아니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소를 팔아 대학 등록금을 댔다고 해서 한때 대학은 ‘우골탑’이라고 불렸다. 소의 뼈로 쌓은 탑이라는 뜻으로, 농사짓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소를 팔아서라도 자식을 대학에 보내려는 부모의 교육열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런 부모의 희생을 통해서 경제 발전이 이루어졌다. 대학에서 배운 지식으로 1960년대 이후 비약적 경제 발전이 이루어졌다. 기초과학 분야 역시 서구의 과학적 전통을 이해하고 모방하는 단계까지 도달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기초과학은 공학과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공학과 과학을 동일시한다. 이건 착각이다. 물리학자들의 연구는 그 시대의 생활을 편리하게 만드는 기술 개발과는 거리가 멀었다. 전자, 양자, 블랙홀, 암흑물질 등 과학은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자연법칙의 원리를 파헤치며 앞선 관점에서 시공간과 물질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시대를 앞선 상아탑의 지식이 기초가 돼 세상과 산업을 발전시켰던 것이다.

느닷없이 ‘카르텔’로 시작해 연구비 삭감으로 한 해를 마무리한 2023년. 세상은 우리와 상관없이 미래로 나아갔다. 2023년 아토초(attosecond·100경분의 1초) 단위 실험을 가능하게 한 과학자들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세기에 발전한 양자역학은 나노 원자, 분자, 물질에 대한 이해를 높여줬다. 즉, 양자 시스템이 어떻게 조직되고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줬다. 하지만 21세기에는 양자 시스템을 원하는 대로 동작하는 기술이 필요한 시대다. 양자의 ‘제어 시대(control age)’가 시작된 것이다. 이런 새로운 과학적 패러다임의 선두에 자리 잡은 것이 아토초 물리학이다.

1960년대 나노의 시대가 열릴 때 레이저가 개발됐다. 레이저가 개발되면서 나노 시대의 실마리를 찾게 됐다. 그 후 1990년대 펨토초 레이저 기술이 개발돼 지금 우리는 펨토초 시대에 살고 있고, 이제 아토초의 시대가 열렸다.

나노 시대의 산물인 반도체가 기초과학의 전부로 인식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세상이 지금 얼마나 앞서 나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우리를 여기까지 이끈 우골탑 정신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어디로 향해야 할지, 어디에 힘을 모아야 할지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볼 때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