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현 금융위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서민·소상공인에게 힘이 되는 신용사면’ 민당정 협의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4.1.11 뉴스1
정부와 국민의힘이 어제 당정협의회를 열어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대출 연체 기록을 삭제하는 ‘신용사면’을 추진하기로 했다. 코로나19로 영업이 어려워 금융회사에서 빌린 돈을 제때 못 갚아 신용도가 떨어진 자영업자들이 대출 등에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290만 명이나 되는 수혜자들의 연체 기록이 지워질 경우 금융회사들이 우량 대출자와 부실 대출자를 구분할 기준이 없어진다는 게 문제다.
당정이 합의한 신용사면의 대상은 2021년 9월부터 이달까지 2000만 원 이하의 연체를 했던 사람 중 올해 5월 말까지 빚을 모두 갚는 자영업자와 취약계층이다. 3개월 이상 연체한 기록이 남아 있는 290만 명이 혜택을 볼 전망이다. 2021년 10월에도 코로나19 충격으로 연체한 개인사업자 230만 명의 기록을 삭제해준 적이 있다. 당시엔 2020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2000만 원 이하를 연체한 채무자 중 2021년 말까지 빚을 갚은 이들이 대상이었다.
하지만 팬데믹이란 재난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정부가 나서서 연체 기록을 지워주는 일이 반복되면 금융산업의 근간인 신용 질서가 흔들리고,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 빚 잘 갚는 채무자와 자주 연체한 채무자를 구별할 수 없으면 금융회사는 전체 대출금리를 높이고, 한도는 줄이게 된다. 힘들어도 꼬박꼬박 빚 갚은 사람들이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의미다.
이번 신용사면은 4·10총선을 두 달 앞둔 2월 설 연휴 직전에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의 ‘은행권 종노릇’ 비판과 금융당국의 압박으로 은행들이 자영업자 187만 명을 대상으로 2조 원 규모의 지원방안을 내놓은 게 불과 3주 전이다. 550만 자영업자들에게 초점을 맞춘 잇따른 조치는 결국 총선을 겨냥한 정부 여당의 선심 공세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