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구급대가 출동한 후 응급실 도착까지 1시간 넘게 걸린 환자, 19만8892명(2022년 기준, 소방청).
김진수(가명·68) 씨는 그런 환자 중 1명이었다. 그는 지난해 1월 12일 오후 8시 37분 가슴 통증과 호흡 곤란 증세로 119에 신고됐다. 만약 심장에 이상이 생긴 거라면 서둘러 치료해야 하는 상황. 인근 구급대가 2분 만에 출동해 3분 만에 진수 씨 자택에 도착했다.
● 병상 찾아 전화 31통, 우리 응급의료의 현실
곧 응급실로 출발할 거란 진수 씨의 기대와 달리 구급대원들은 전화기부터 들었다. “68세 남자 환자인데 체스트 페인(가슴 통증)이랑 디습니아(호흡 곤란)가 있습니다. 수용 가능할까요?” 몇 초의 대기.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구급대원은 다시 휴대전화에 저장된 인근 응급실 목록을 훑었다. 전화한 병원에서 ‘대기 환자가 많다’며 진수 씨를 받아주지 않은 것.응급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떠도는 원인과 해법을 조명한 미니 다큐멘터리 ‘표류’의 한 장면.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 캡처.
대형 병원 56곳이 몰려있는 서울 한복판에서 응급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떠도는 ‘표류’가 벌어지고 있었다. 응급실과 중환자실 의료진이 모두 가동되는 병원이 어딘지 찾아주는 시스템이 있을 법도 한데, 그런 시스템은 없었다.
진수 씨는 119에 신고한지 1시간 15분 만에 가까스로 서울의 한 응급실에 도착했다. 구급대가 31차례 전화한 끝에 닿은 곳이었다. 그는 다행히 큰 이상 없이 건강을 회복했지만 아찔한 상황이었다. 중앙응급의료센터에 따르면 2022년 전국 응급실을 찾은 환자 가운데 3만7926명이 끝내 숨졌다.
● 일본, 응급환자 ‘표류’ 멈출 때까지 모든 응급실에 경보
일본의 응급의료체계도 16년 전에는 지금 한국과 마찬가지였다. 구급대가 병원마다 일일이 전화해 환자의 상태를 불러주며 수용 가능한지 물어야 했다. ‘구급차 뺑뺑이’와 같은 의미의 ‘구급차 다라이 마와시(たらい回し·대야 돌리기)’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였다.응급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떠도는 원인과 해법을 조명한 미니 다큐멘터리 ‘표류’의 한 장면.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 캡처.
일본 오사카부는 구급대원 단말기에 이송 가능 병원을 자동으로 띄워주는 ‘오리온 시스템’도 2013년 도입했다. 구급대원이 입력한 환자의 증상과 정보, 현재 위치를 기반으로 이송할 수 있는 병원 목록이 거리순으로 띄워주는 시스템이다. 구급대원이 환자를 이송할 병원을 정하는 과정이 자동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 실시간 응급의료체계, 왜 한국서 안 되나
한국에서도 응급실이 실시간으로 가용 의료 자원을 공유하고, 구급대가 최적의 병원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을 개발하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좌절됐다. 일본의 오리온 시스템과 흡사한 ‘AI 앰뷸런스’ 사업이 대표적이다. 소방서와 응급실의 참여가 저조해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응급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떠도는 원인과 해법을 조명한 미니 다큐멘터리 ‘표류’의 한 장면.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 캡처.
그 고민을 담은 미니 다큐멘터리 ‘표류’를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www.youtube.com/@donga-ilbo)에서 공개한다. 1부 ‘목적지 없이 떠도는 응급환자’는 12일 오후 1시부터, 2부 ‘떠도는 응급의료 해법들’은 15일 오후 1시부터 각각 시청할 수 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