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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서울에서 화재를 진압했던 방법 - 소방대 출초식 사진 [청계천 옆 사진관]

입력 | 2024-01-13 11:00:00

백년사진 No. 43




▶ 용의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100년 전 신문에 실린 사진을 통해 오늘의 사진을 생각해보는 [백년사진]입니다. 오늘은 1924년 1월 7일 자에 실린 사진을 골랐습니다.


소방대 출초식 사진/ 1924년 1월 7일 자 동아일보

▶ 사람 키의 3배쯤 되는 긴 사다리 네 개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그 아래에서 유니폼을 입은 수십 명의 사람들이 지지대를 잡은 채 공중에 매달린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서커스 동작처럼 고난도의 몸동작이 시선을 끕니다. 서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어떤 모습을 촬영한 사진일까요? 사진과 조금 떨어진 지면에 관련 기사가 있었습니다. 옮겨봅니다.

京城消防出初式- 작일 아침 대한문 앞에서년년히 행하는 경성상비소방대(京城常備消防隊) 룡산소방대(龍山消防隊)의 출초식(出初式)은 어제 6일 오전 9시경에 시내 대한문 앞에서 거행하였다. 이미 만들어 놓은 조그마한 집에 불을 질렀는데 마침 불어오는 서북풍에 형세를 맞춰 염염히 타오르는 형세는 과연 큰 화재나 난 듯이 굉장하였으며 그와 동시에 소방대원들이 “뽐뿌”를 들이대고 진화하는 광경은 그야말로 참 굉장하였다. 대한문 넓은 마당에는 구경꾼이 산 같이 모여 매우 복잡을 이루었고, 기타 경기도 경찰부를 위시하여 시내 각 경찰서장과 관계 인사가 다수히 내참하였으며 9시 반에 출초식을 마친 후 경기도 마야경찰부장(馬野警察部長)과 경기도 좌등내무부장(佐藤內務部長)의 훈시가 있었더라. 동아일보 1924년 1월 7일자▶ 기사를 보니 새해를 맞아 소방대원들이 훈련을 하는 모습입니다. 덕수궁 대한문 앞은 그 때나 지금이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행사들이 진행된 핫플레이스였군요. 출초식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행사인데 처음 나선다는 뜻인가 봅니다. 동아일보 내부의 기사화상 검색망에 들어가 ‘출초식’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니 1920~30년대에 관련 기사가 꽤 많이 있었습니다. 1940년이 마지막으로 검색되는 거로 봐선 그때까지만 쓰였던 용어 같습니다. 지금도 소방 관계자분들께서 이 용어를 쓰는지 궁금합니다.

▶가상의 주택을 만들고 거기에 불을 붙인 후 소방대원들이 평소 갈고 닦은 소방 실력을 고위 공직자들과 시민들 앞에서 시연하는 행사입니다. 사진 속 사다리는 지금의 사다리에 비하면 그리 높은 편은 아닙니다만 당시 대부분의 건물이 1층짜리였다는 걸 고려한다면 불을 끄는 데는 그나마 적절한 높이였을 겁니다. 받침대가 있는 사다리에 올라가 화재 현장을 향해 호스를 대는 소방수와 그 아래에서 물을 공급하는 펌프(뽐뿌)를 운용하는 소방수가 팀을 이루는 방식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1920년대에는 목조 건물과 초가집 등이 화재사고의 대부분이고 시민들의 삶과 직접 연결된 것이었습니다. 당시 신문에는 겨울철마다 서울 시내 화재 사고 현장에 대한 보도가 꽤 많습니다. 목조 건물이다보니 한 채가 타면 그 옆으로 불이 삽시간에 번져서 피해가 컸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소방대원들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가 컸을 겁니다. 새해 벽두에 시내 한가운데 가상의 화재 현장을 만들고 불을 끄는 훈련을 했던 이유일 겁니다.

▶요즘 이뤄지는 소방훈련을 잠깐 떠올려 봅니다. 사다리도 금속 재질에다 높이도 아주 높아졌습니다. ‘뽐뿌’의 성능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해졌구요.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가상의 화재 현장 모습입니다. 2008년 남대문이 방화범에 의해 불탄 후 고궁 등 문화재에서 가상의 화재가 발생한 상황을 가정해 훈련을 하기도 하고, 일본 지진이 발생한 후에는 지진대피 훈련을 합니다. 게다가 롯데타워 등 초고층 빌딩이 곳곳에 들어서면서 시민들의 걱정이 생기자 요즘에는 고층 건물 화재 대피 훈련 등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소방훈련도 시대에 맞게 연출되어 왔습니다. 그걸 찍은 사진도 시대별로 다른 모습으로 남아 있구요. 당연한 얘기지만 사진을 찍는 입장에서는 아주 흥미롭습니다.

▶사진의 구도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하겠습니다. 지금도 사진기자들이 선호하는 구도입니다. 사선(射線)구도인데요, 일렬로 서 있는 사다리들이 겹쳐 보이도록 측면에서 촬영했습니다. 만약 나란히 서 있는 사다리들을 정면에서 보면서 사진을 촬영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다리의 형태는 더 잘 보일 수 있겠지만 문제는 사진을 크게 써야지만 제대로 보이게 될겁니다. 측면에서 사진을 찍으면 좁은 지면에 많은 피사체와 내용을 포함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인터넷으로 신문을 보는 것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2000년대 이전까지 신문 사진에서 정말 선호되고 거의 정답처럼 인식되었던 구도가 사선 구도였습니다. 인터넷은 지면의 제약이 없다 보니 ‘평평한’ 사진도 새로운 시각을 독자에게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많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새해를 맞아 한 해의 화재 사고를 대비하던 100년 전 우리 사회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 댓글에서 확인하고 싶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