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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착취, 질병, 환경파괴… 달콤함 위해 치른 대가

입력 | 2024-01-13 01:40:00

대량생산 과정서 각종 부작용 발생
인공감미료 한때 판매 금지되기도
설탕과 함께해온 인간의 역사 담아
◇설탕: 2500년 동안 설탕은 어떻게 우리의 정치, 건강, 환경을 변화시켰는가./월버 보스마 지음·조행복 옮김/624쪽·3만5000원·책과함께




막 출근한 직장인들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커피믹스. 믹스 커피는 커피 맛 때문에 선택하는 걸까, 달달한 설탕 맛 때문에 마시는 걸까. ‘믹스 커피에 중독됐다’고 하는 사람까지 있는 걸 보면 후자가 더 큰 영향을 끼친 게 아닐까. 이 책은 희귀품이던 설탕이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 된 과정과 그로 인해 벌어진 착취, 노예제, 비만, 환경 파괴 등 세계사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황제 같은 특권층만 접하던 설탕이 유럽에 확산되면서 폭력적인 공급이 이뤄졌다고 말한다. 대서양을 건넌 아프리카 노예 상당수가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장으로 끌려갔는데, 이는 설탕에 대한 유럽인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저자는 설탕의 대량 생산으로 교역이 발달하면서 주도권 쟁탈을 위한 자본가들과 설탕 가문, 설탕을 대체할 인공 감미료를 생산하는 대기업의 각축전이 확대됐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이들이 국가 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아스파르템(인공 감미료)은 1975년에 판매가 금지됐지만, 금지 조치가 영원하지는 않았다. (미국) 국방부 장관을 지냈고 나중에 또 그 자리에 오르는 도널드 럼즈펠드가 설(아스파르템 개발사)의 회장으로 고용되는데, 금지 조치의 취소를 이끌어 내는 것이 그의 임무 중 하나였다.”(14장 ‘천연 식품보다 더 달게’ 중)

저자는 현대의 설탕 산업이 환경 파괴는 물론이고 개발도상국의 수많은 노동자를 저임금 착취 노동에 시달리게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 의학계가 오랫동안 설탕이 비만과 당뇨병의 원인이 되는 등 건강에 해롭다고 지적함에도 불구하고, 설탕 산업계는 단합해 다양한 방법으로 설탕의 부정적인 면을 감추고 오히려 설탕이 필수적인 에너지원으로 깨끗하다고 호도한다고 말한다. 내용이 다소 전문적이고 딱딱하지만, 설탕을 중심으로 본 세계사와 근현대 관련 산업계의 각축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읽다 보면 ‘총, 균, 쇠’(재러드 다이아몬드 저)의 ‘설탕’ 버전 같다는 느낌도 든다. 원제는 ‘The World of Sugar’.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