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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작년 1969곳 감소… “車 15분 거리도 빈자리 없어”

입력 | 2024-01-13 01:40:00

저출산-코로나 겹쳐… 4년새 23% 급감
아이 감소→폐원 속출→저출산 악순환




서울 서대문구에서 두 딸을 키우는 엄마 김모 씨(37)는 이달 이사를 준비하다 딸들의 보육 문제로 곤경에 처했다. 큰딸은 5세반, 작은딸은 3세반에 보내야 하는데 두 반을 동시 운영하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이사 갈 집 근처에 한 곳도 없었기 때문. 인근 시설들에 문의해 보니 “원래 다 운영했는데 아이가 줄어들어 반 개수를 줄였다”는 답이 돌아왔다. 3, 5세반을 모두 운영하는 가장 가까운 시설은 차로 15분 거리인데, 그나마도 빈자리가 없어 대기를 걸어야 한다. 육아휴직 중인 김 씨는 이사를 마치고 복직을 해서 새 집 대출금을 상환할 계획이었는데 계획이 어그러질까 속이 탄다.

12일 한국사회보장정보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전국 어린이집은 총 2만8954곳으로 2022년 12월(3만923곳)보다 1969곳 줄었다. 매일 5.3곳씩 문을 닫은 셈. 매해 12월 조사에서 어린이집 수가 3만 곳 아래로 줄어든 건 2006년 이후 처음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 12월(3만7371곳)과 비교하면 4년 새 22.5% 급감했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심각한 저출산 때문이다. 여기에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감염을 우려해 가정 보육이 늘어난 것도 한 원인이 됐다. 이 때문에 김 씨처럼 아이 맡길 곳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부모가 늘고 있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저출산 탓에 아이가 줄어 어린이집이 폐업하고, 이를 지켜본 젊은층이 출산과 육아를 기피하며 다시 저출산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지난해 11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자녀 계획이 없는 이유’ 1위로 ‘양육 및 교육 부담’(24.4%)이 꼽혔다.



“육아휴직 끝나는데…” 아이 맡길곳 없어 출산 기피

어린이집 작년 1969곳 감소경기 하남의 한 아파트 단지에선 최근 3년 새 가정 어린이집 2곳이 문을 닫았다. 저출산으로 입소 희망 아동은 줄어드는데,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월세 부담이 커진 탓이었다. 마지막까지 버티던 가정 어린이집 한 곳도 다음 달 운영을 중단할 예정이다. 갑자기 폐원 통보를 받은 부모들은 부랴부랴 새 어린이집을 찾아야 한다. 주민 정모 씨는 “지난해 이사 와서 이제 반 분위기에 적응했는데, 새 선생님과 친구를 만나 또 적응해야 하는 아이가 안쓰럽다”고 말했다.

저출산의 여파는 가정 어린이집부터 찾아왔다. 2019년 1만7117곳이었던 가정 어린이집은 지난해 말 1만692곳으로 38% 급감했다. 가정 어린이집은 주로 0, 1세의 아주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곳이 많다. 이 때문에 출산율이 줄면 이곳부터 여파가 미친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민간 어린이집도 같은 기간 1만2568곳에서 8886곳으로 줄었다.

정부는 이 기간 국공립 어린이집 1863곳을 늘렸지만 쪼그라드는 ‘보육 인프라’를 유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관계자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분주히 국공립 어린이집을 늘렸지만, 기존에 있던 민간 어린이집을 국공립으로 전환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합계출산율이 0.7 미만으로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저출산 현상이 최악으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해선 보육 인프라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두 딸을 키우는 김모 씨는 “이미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난처한 상황에 처하는 것을 아직 미혼인 젊은이들이나 신혼 부부들이 본다면 누가 아이를 낳아 키우려 하겠느냐”고 말했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