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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58% 확률 ‘로빈후드 애로우’ 주현정의 소감은? 이게 韓양궁 클래스[이헌재의 인생홈런]

입력 | 2024-01-14 12:00:00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여자 단체전 금메달리스트 주현정이 자신이 운영하는 ‘주현정양궁클럽’에서 활을 들어 보이고 있다. 용인=이헌재 기자 uni@donga.com


한국 양궁이 세계 최강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특히 한국 여자 양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양궁 단체전이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가장 최근에 끝난 2021년 도쿄 올림픽까지 한국 여자 선수들은 여자 단체전에서 9대회 연속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해 열리는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한국 여자 양궁은 올림픽 10연패의 위업을 이루게 된다.


아무리 한국 양궁이 세계 최고라 해도 남미에 있는 콜롬비아 언론이 한국 양궁을 크게 다룰 일은 별로 없다. 그런데 2014년 콜롬비아 언론 ‘엘 콜롬비아노’는 2008 베이징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리스트이자 한 때 세계랭킹 1위에도 올랐던 주현정(42)을 대서특필했다. 눈앞에서 보고도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해 세계양궁연맹(WA) 1차 월드컵이 열린 차 콜롬비아 메데린에서 한국 양궁 선수들은 대회 전 비공식 훈련을 하고 있었다. 주현정은 연습 도중 과녁 한가운데 명중시킨 화살 끝은 다른 화살로 또 한 번 꿰뚫어버렸다. 두 개의 화살이 이어져 기다란 한 개의 화살이 됐다. 0.0058%의 확률로 나온다는 일명 ‘로빈후드 애로우’였다. 세계양궁연맹도 이 소식을 전하면서 이는 전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2014년 로빈후드 애로우를 성공시킨 뒤 포즈를 취한 주현정. 한가운데 명중한 화살에 또 하나의 화실이 꽃혔다. 세계양궁연맹 홈페이지


주현정의 로빈후드 애로우를 대서특필한 콜롬비아 신문.



하지만 놀라운 건 주현정 및 한국 양궁 대표팀 선수들의 반응이었다. 마치 큰일이라도 난 듯 사진을 찍고 취재에 나선 현지 언론과 달리 주현정은 그저 담담했다. 주현정은 “연습 때는 화살을 많이 쏘다 보니 화살끼리 ‘도킹’하는 일이 종종 있다”며 “그날 ‘로빈후드 애로우’를 쏜 뒤에도 처음 든 생각은 ‘에이, 아까운 화살 하나 버렸네’ 였다. 맞은 화살은 더이상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게 그렇게 큰 화제가 될 줄 몰랐다. 사진을 찍자고 했을 때도 민망했다”며 웃었다. 그는 “경기 때는 로빈후드 애로우를 기록한 적이 없다. 하지만 연습 때는 심심찮게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20번 이상은 한 것 같다”고 했다.


주현정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혜성처럼 등장했다. 20대 중반이 될 때까지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그가 한국 양궁의 신데렐라로 등장한 것이다. 당시 소속팀이던 현대모비스에서 양창훈 감독을 만난 게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그는 “난 원래 활을 빨리 쏘는 스타일이었다. 많은 분들이 그걸 불안하게 생각했는데 양 감독님은 달랐다. 오히려 ‘시원시원하게 쏘니까 속이 뻥 뚫린다’고 칭찬해주셨다. 그때부터 자신감이 붙었다”고 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그가 처음 출전한 메이저대회였다. 그는 박성현, 윤옥희와 짝을 이뤄 여자 단체전 금메달을 따냈다. 2009년 울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개인전과 단체전을 석권했고,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며 세계랭킹 1위에도 올랐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양궁 여자 단체전 금메달을 따 낸 박성현, 윤옥희, 주현정(왼쪽부터). 동아일보 DB


수많은 영광의 순간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빛나는 장면 중 하나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때 나왔다. 엄마 선수였던 그는 3명을 뽑는 대표 선발전을 3위로 통과했다. 오른쪽 어깨 통증을 딛고 당당히 태극마크를 달았다.

하지만 그는 대회를 앞두고 출전 자격을 4위 이특영에게 양보했다. 어깨가 아픈 자신이 후배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올림픽 금메달보다 어렵다’는 국가대표 자리를 선뜻 내놓은 ‘아름다운 양보’였다.

주현정을 대신한 이특영이 선전하면서 한국 여자 대표팀은 그해 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금메달 수확에 성공했다. 금메달을 확정 지은 후 한국 선수들은 관중석에서 응원하던 주현정을 경기장으로 데리고 와 함께 세리머니를 하며 눈물을 쏟았다. 주현정은 “예전 같았으면 어깨가 찢어지는 한이 있어도 대표 자리를 내놓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대표 최종 선발전 후 후배들의 눈물을 보면서 내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내가 한국 대표팀의 금메달에 방해가 되선 안 되겠구나’라고 마음을 굳혔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이듬해인 2015년 25년간 정들었던 활을 내려놨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후배 이특영을 눈물로 축하하고 있는 주현정의 모습. 동아일보 DB


현재 주현정은 경기 용인 처인구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주현정양궁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사거리 30m가 나오는 널찍한 실내 공간에서 수강생들을 지도한다.

100명 가까운 수강생 중 70% 정도는 초등학생부터 고교생까지의 학생들이다. 하지만 양궁을 취미로 하는 성인들도 20~30명이 된다. 손자와 함께 온 70대 어르신은 양궁의 매력에 푹 빠져 오히려 더 열심히 활을 쏜다고 한다. 서울에서 매주 이곳을 찾는 수강생도 있다. 주현정은 “한 번 수업이 60분 가량 된다. 많은 분들이 ‘일주일간의 스트레스를 날리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말씀해 주신다. 몇몇 주부 수강생들은 ‘활을 잡고 난 후 모처럼 다시 가슴이 뛰는 것 같다’고 하신다”고 말했다.


학생들도 모두 ‘엘리트 선수’를 목표로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학업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활을 쏘는 학생들이 훨씬 많다. 그는 “아이가 활을 쏘면서 사춘기를 무난히 보내고 있다는 말씀을 부모님들로부터 듣곤 한다”고 했다.

엘리트 선수를 목표로 하는 학생들은 20여 명 가량이다. 주현정은 그들에게 착실히 기본기를 가르친 뒤 양궁부가 있는 학교로 진학시킨다. 그는 “사실 돈을 번다기보다는 학생과 성인들을 가르치면서 느끼는 성취감이 훨씬 크다”며 “한때 양궁을 했던 선수 출신 두 분을 코치로 모셨다. 저도 은퇴를 했지만 은퇴 선수 출신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다는 보람도 있다”고 했다.


2010 동아스포츠대상에 참석한 주현정. 동아일보 DB


‘주현정양궁클럽’이 짧은 시간 안에 자리를 잡게 된 데는 한국 양궁의 힘이 결정적이었다. 주현정이 처음 클럽의 문을 연 것은 2021년이었다. 당시엔 사거리가 10m 밖에 되지 않는 크지 않은 공간이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인테리어도 남편과 함께 직접 했다. 그는 “양궁을 하려면 장비가 꽤 필요하다. 인테리어 비용으로 장비를 더 많이 구입해 누구든 편히 몸만 와서 배우게 하자는 생각이었다”며 “처음 수강생이 1명일 때가 있었는데 그때는 벽에 못을 박다가 수업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제대로 가르친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몇 달 되지 않아 수강생은 20~30명으로 늘었다.

그리고 2021년 여름에 열린 도쿄 올림픽이 그에겐 큰 기회가 됐다. 한국 양궁은 도쿄 올림픽에서 남자 개인전을 제외한 4개 종목 금메달을 땄다. 각각 3관왕과 2관왕에 오른 여자 양궁의 안산과 남자 양궁의 김제덕의 활약이 빛났다. 때마침 그는 여름 휴가를 떠나 있었는데 휴대 전화 등을 통해 “나도 양궁을 배우고 싶다”는 전화가 빗발쳤다. 받을 수 있는 데까지 사람을 받았더니 비는 시간 없이 140명의 수강생이 가득 찼다. 주현정은 “지금은 다소 줄어 80~90명의 수강생이 있다. 더 나은 공간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작년 9월에 훨씬 넓은 현재의 장소로 이전했다”고 말했다.


주현정은 2008년 한 살 연하의 양궁 선수 계동현과 결혼했다. 당시 세계기록을 갖고 있던 계동현과 ‘부부 신궁’으로 불렸다. 동아일보 DB


그는 양궁클럽 운영 외에도 양궁 메달리스트들의 모임인 ‘명궁회’ 회장도 맡고 있다. 명궁회 회원들과 함께 초등학교 등을 돌며 재능기부를 다닌다. 지역에서 열리는 학생 양궁 대회나 생활체육 대회의 살림을 챙기는 것도 그의 몫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 속에서도 그는 골프를 통해 몸과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은퇴 후 한동안 수영을 열심히 했던 그는 요즘엔 틈이 될 때마다 필드를 걸는다. 선수 시절 여자 선수 중 유독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했던 그는‘장타자’이기도 하다. 드라이버로 평균 180m, 멀리 칠 때는 220m 가량 보낸다. 그는 “요즘도 여전히 양궁을 하고 싶지만 활시위를 당기면 선수 때 아팠던 어깨에 통증이 있다. 그래서 골프를 대신 친다”며 “따지고 보면 골프와 양궁은 비슷한 점이 많다. 준비과정도, 피니시 과정도 비슷하다. 침착하게 어드레스를 한 뒤 힘을 빼고 치거나 시위를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80대 중반 스코어를 친다는 그는 “양궁과 골프 모두 끊임없이 코칭을 통해 배워야 하는 것도 공통점 중 하나다. 올해는 골프를 한 번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양궁을 통해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결혼을 하고, 양궁클럽까지 운영하게 된 그는 “앞으로 양궁 저변을 확대하는 게 인생의 목표”라고 했다. 그는 “한국 양궁이 지금처럼 세계 정상을 유지하려면 엘리트 체육뿐 아니라 생활체육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점점 선수층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지만 한국 양궁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