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가 모두 북부 출신… 전쟁후 피란 “기다려도 전쟁 안 끝날 것 같아” 폐교서 식 올리고 텐트서 축하연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부 아프난 지브릴(가운데)이 환한 미소로 예식을 즐기고 있다. X(옛 트위터) 캡처
“우린 모두 비극을 겪고 있다. 그래도 우린 살아가야 한다. 삶은 계속되기 때문이다.”(무함마드 지브릴)
12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국경 지역인 라파에서는 조촐하지만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북부에서 전쟁을 피해 온 피란민인 무스타파 샴라크(26)와 아프난 지브릴(17)이 한 폐교에서 백년가약을 맺었다. 아프난의 아버지인 무함마드 씨는 “죽음과 살인, 파괴가 벌어져도 우린 생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AFP에 따르면 라파 역시 매일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아 위험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신부 아프난은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화관을 쓴 채 가족과 친구들의 축하를 받으며 등장했다. 신랑과 신부는 춤을 추며 결혼식을 만끽했고, 하객들은 하얀 무스를 뿌리며 그들을 축하했다.
모두가 애써 웃는 기쁜 날이었지만 속앓이가 없지 않았다. 신부 아버지 무함마드 씨는 “결혼식에 필요한 물품들은 구하기가 힘들었다”며 “겨우 예식복들만 비싼 돈을 주고 간신히 구했다”고 토로했다. 신랑의 삼촌인 아이만 샴라크 씨는 “신혼부부가 살 예정이던 북부의 집은 공습으로 파괴됐다”며 아쉬워했다.
14일로 개전 100일째를 맞는 가운데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팔레스타인인은 지금까지 2만3000여 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어린이와 여성이 70%를 넘는다. 유엔은 “가자지구 인구의 80%인 190만 명이 피란민 신세가 됐다”고 추산한다. 구호물자가 반입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해 많은 이들이 굶주림에 처했다. 의료 시스템도 붕괴돼 전염병까지 퍼지고 있다.
결혼식을 마친 신혼부부는 텐트에서 열리는 또 다른 축하연에 참석하기 위해 장소를 옮겨 갔다. AFP는 “두 사람이 하객들에게 둘러싸인 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몸을 싣는 장면만큼은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여느 결혼식과 마찬가지였다”고 전했다.
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