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 다시 ‘1.0대’로] 1부 출산율 반등 이룬 나라들 〈1〉‘출산율 3배로’ 日이토추의 기적 “낮 3시 퇴근 가능, 주 2회 재택”… 유연근무 이토추, 출산율 3배로 ‘대학생 취업선호 기업 1위’ 꼽혀
일본 도쿄 미나토구 이토추상사 본사에 있는 어린이집에서 교사들이 임직원 자녀들을 돌보고 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유연 근무제와 재택근무를 활용하니 확실히 아이 키우며 일하기가 쉬워졌습니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면서 업무 집중력도 높아졌어요.”
일본 5대 종합상사 중 하나인 이토추상사의 정보기술(IT) 부문 19년 차 여직원 이치하시 가요(市橋加代) 씨는 “2022년 딸을 낳고 육아휴직을 쓴 후 지난해 11월 복직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치하시 씨는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하는 ‘아침형 유연 근무제’와 주 2회 집에서 일하는 ‘재택근무제’를 동시에 이용하고 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딸은 매일 아침 아빠와 등원하고, 오후에는 일찍 퇴근한 엄마와 함께 집에 온다. 이치하시 씨는 “매일 야근하던 때와 비교하면 건강도 좋아졌다”며 “회사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을 독려하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일하는 방식’을 바꿔 청년이 마음 놓고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정책이 그 중심에 있다. 지난해 3월 당시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경제산업상은 이토추상사 본사를 방문해 “이토추상사 같은 창의적 발상을 촉진하고 싶다”며 ‘이토추 모델’을 확산시키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현재 캐논, 덴소, 아지노모토, 도쿄가스, 일본항공, 후지제록스 등의 대기업이 각자의 특성에 맞는 유연 근무제를 도입한 상태다.
“야근 금지”… 일하는 방식 바꿨더니 ‘출산율-생산성’ 둘다 뛰어
야근 밥먹듯 하던 회사가 야근 금지… 회사가 사무실 돌며 강제로 불 꺼
조기출근땐 수당, 업무효율 높아져
日 ‘이토추 모델’ 모범 사례로 꼽아… 경제단체, 회원사에 도입 권고
지난해 12월 14일 일본 도쿄 미나토구의 이토추상사 본사. 오전 7시로 이른 시간임에도 지하 1층 구내식당 입구에 무료 아침밥을 먹기 위한 긴 줄이 생겼다. ‘아침형 유연 근무제’를 선택하고 오전 5∼8시에 출근한 직원들이다.조기출근땐 수당, 업무효율 높아져
日 ‘이토추 모델’ 모범 사례로 꼽아… 경제단체, 회원사에 도입 권고
아침형 근무제는 쉽게 말해 야근을 다음 날 아침에 하는 것이다. 이토추상사는 오후 8시 이후 야근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오전 5∼8시 업무를 심야근무로 취급해 추가 근무수당을 준다. 대신 퇴근은 이르면 오후 3시부터 할 수 있게 했다.
아침형 근무제는 2013년 도입 후 직원 합계출산율을 끌어올린 견인차로 평가받는다. 현재 전체 직원의 약 60%가 아침형 근무제를 선택하고 있다.
● 퇴근 눈치 보던 회사에 ‘야근 금지’ 충격
2000년대 들어 ‘일하기 쉬운 회사’라는 목표를 세운 이토추상사는 먼저 인사제도 개혁에 착수했다. 육아기 단축 근무, 배우자 해외 발령 휴직, 관리직 여성 일정 비율 채용 등의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기대만큼 효과가 나오지 않았다. 사내에선 “왜 육아를 하는 직원만 우대하느냐”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오후 3시 이후 퇴근할 수 있는 유연 근무제는 직원들의 생활 패턴과 기업 문화를 동시에 바꿨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회식 문화가 없어졌고, 기혼 직원들은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미혼 사원은 자기계발과 취미생활에 시간을 쓸 수 있게 됐다.
오전 7시 50분 전에 근무하면 심야근무와 같은 할증 임금(25%)을 지급하는 것에 대한 만족도도 높았다. 사내 노동조합이 뽑은 ‘회사의 가장 뛰어난 정책’ 1위에 아침형 근무 제도가 꼽히기도 했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는 게 당연해지면서 사내 분위기도 바뀌었다. 이치하시 씨는 “육아에 참여하는 남자 직원이 많아지면서 서로 공감하는 환경이 조성됐다. 상사들도 육아에 필요하다면 일은 알아서 할 것으로 믿고 자연스럽게 업무 조정을 해 준다”고 말했다.
● 노동생산성 향상 대책이 출산율 높여
이토추상사 측은 출산율 상승을 위한 조치가 아니라 노동생산성 향상 대책이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이토추상사 관계자는 “특정 사원만을 위한 대책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남녀 모두 일하는 방식과 습관을 바꾼 게 결과적으로 여성 활약 촉진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