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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 0.6명→1.97명… 日기업 9년만의 ‘기적’

입력 | 2024-01-15 03:00:00

[출산율, 다시 ‘1.0대’로]
1부 출산율 반등 이룬 나라들 〈1〉‘출산율 3배로’ 日이토추의 기적
“낮 3시 퇴근 가능, 주 2회 재택”… 유연근무 이토추, 출산율 3배로
‘대학생 취업선호 기업 1위’ 꼽혀



일본 도쿄 미나토구 이토추상사 본사에 있는 어린이집에서 교사들이 임직원 자녀들을 돌보고 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유연 근무제와 재택근무를 활용하니 확실히 아이 키우며 일하기가 쉬워졌습니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면서 업무 집중력도 높아졌어요.”

일본 5대 종합상사 중 하나인 이토추상사의 정보기술(IT) 부문 19년 차 여직원 이치하시 가요(市橋加代) 씨는 “2022년 딸을 낳고 육아휴직을 쓴 후 지난해 11월 복직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치하시 씨는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하는 ‘아침형 유연 근무제’와 주 2회 집에서 일하는 ‘재택근무제’를 동시에 이용하고 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딸은 매일 아침 아빠와 등원하고, 오후에는 일찍 퇴근한 엄마와 함께 집에 온다. 이치하시 씨는 “매일 야근하던 때와 비교하면 건강도 좋아졌다”며 “회사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을 독려하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토추상사는 일본에서 일하는 방식을 개선해 생산성과 출산율을 동시에 높인 ‘기적의 회사’로 통한다. 2012년 0.60명이었던 이 회사 직원들의 합계출산율은 2021년 1.97명으로 3배 이상이 됐다. 2010년 대비 2021년 노동생산성(직원 1명당 순이익)은 5.2배로 더 크게 늘었다. 이 같은 성과가 화제가 되면서 이 회사는 지난해 아사히신문 등이 선정한 ‘대학생이 가장 취업하고 싶은 기업’ 1위에 올랐다.

2005년 합계출산율 1.26명으로 최저점을 찍었던 일본은 이후 전방위적인 출산·육아 지원에 나서며 2015년 합계출산율을 1.45명까지 반등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2022년 다시 1.26명으로 떨어지면서 국가적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일하는 방식’을 바꿔 청년이 마음 놓고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정책이 그 중심에 있다. 지난해 3월 당시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경제산업상은 이토추상사 본사를 방문해 “이토추상사 같은 창의적 발상을 촉진하고 싶다”며 ‘이토추 모델’을 확산시키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현재 캐논, 덴소, 아지노모토, 도쿄가스, 일본항공, 후지제록스 등의 대기업이 각자의 특성에 맞는 유연 근무제를 도입한 상태다.




“야근 금지”… 일하는 방식 바꿨더니 ‘출산율-생산성’ 둘다 뛰어



야근 밥먹듯 하던 회사가 야근 금지… 회사가 사무실 돌며 강제로 불 꺼
조기출근땐 수당, 업무효율 높아져
日 ‘이토추 모델’ 모범 사례로 꼽아… 경제단체, 회원사에 도입 권고
지난해 12월 14일 일본 도쿄 미나토구의 이토추상사 본사. 오전 7시로 이른 시간임에도 지하 1층 구내식당 입구에 무료 아침밥을 먹기 위한 긴 줄이 생겼다. ‘아침형 유연 근무제’를 선택하고 오전 5∼8시에 출근한 직원들이다.

아침형 근무제는 쉽게 말해 야근을 다음 날 아침에 하는 것이다. 이토추상사는 오후 8시 이후 야근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오전 5∼8시 업무를 심야근무로 취급해 추가 근무수당을 준다. 대신 퇴근은 이르면 오후 3시부터 할 수 있게 했다.

아침형 근무제는 2013년 도입 후 직원 합계출산율을 끌어올린 견인차로 평가받는다. 현재 전체 직원의 약 60%가 아침형 근무제를 선택하고 있다.



● 퇴근 눈치 보던 회사에 ‘야근 금지’ 충격


1858년 창업한 이토추상사는 20년 전만 해도 옛날식 업무 방식을 고집하던 회사였다. 일이 끝나도 상사 눈치를 보느라 퇴근을 못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부서원이 모두 남아 야근하고 밤늦게 몰려가 회식을 하는 게 일상이었다.

2000년대 들어 ‘일하기 쉬운 회사’라는 목표를 세운 이토추상사는 먼저 인사제도 개혁에 착수했다. 육아기 단축 근무, 배우자 해외 발령 휴직, 관리직 여성 일정 비율 채용 등의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기대만큼 효과가 나오지 않았다. 사내에선 “왜 육아를 하는 직원만 우대하느냐”는 말까지 나왔다.

시행착오 후 회사 측은 목표를 바꿨다. ‘일하기 쉬운’ 대신 ‘힘들어도 보람 있는 회사’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2010년 사내 어린이집을 설치하고, 2013년 아침형 유연 근무제를 도입했다. 장시간 근무가 미덕이던 일본 기업에서 조기 출근, 야근 금지는 충격에 가까웠다. 제도 정착을 위해 인사팀 직원들이 매일 오후 8시에 사무실을 돌며 강제로 불을 껐다. “일하는 중인데 뭐하나”, “잘못되면 인사팀이 책임질 건가” 등의 고함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오후 3시 이후 퇴근할 수 있는 유연 근무제는 직원들의 생활 패턴과 기업 문화를 동시에 바꿨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회식 문화가 없어졌고, 기혼 직원들은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미혼 사원은 자기계발과 취미생활에 시간을 쓸 수 있게 됐다.

오전 7시 50분 전에 근무하면 심야근무와 같은 할증 임금(25%)을 지급하는 것에 대한 만족도도 높았다. 사내 노동조합이 뽑은 ‘회사의 가장 뛰어난 정책’ 1위에 아침형 근무 제도가 꼽히기도 했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는 게 당연해지면서 사내 분위기도 바뀌었다. 이치하시 씨는 “육아에 참여하는 남자 직원이 많아지면서 서로 공감하는 환경이 조성됐다. 상사들도 육아에 필요하다면 일은 알아서 할 것으로 믿고 자연스럽게 업무 조정을 해 준다”고 말했다.



● 노동생산성 향상 대책이 출산율 높여


저출산 대책으로 고민하는 일본 정부는 이토추상사의 일하는 방식 개혁을 모범 사례로 꼽고 확산에 나서고 있다. 일본 정부 경제 정책인 ‘일본 재흥 전략’에 사례로 들어갔고 최대 경제단체 경단련(經團連)이 각 회원사에 도입을 공식 권고했다.

이토추상사 측은 출산율 상승을 위한 조치가 아니라 노동생산성 향상 대책이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이토추상사 관계자는 “특정 사원만을 위한 대책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남녀 모두 일하는 방식과 습관을 바꾼 게 결과적으로 여성 활약 촉진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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