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어느 밤, 친구와 한강 다리를 산책했다. 오랜만에 만난 벗과 가볍게 오른 취기, 비 기운에 젖은 공기조차 낭만적이었다. 중간쯤 왔을까. 녹색 전화기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 힘드신가요?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옆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SOS 생명의 전화’라 쓰여 있었다. 친구가 말했다. “여기서 걸려 오는 전화를 받으면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잠시 침묵이 오간 뒤 내가 반쯤 풀린 혀로 답했다. “나라면! 내일 맛있는 거 먹으면서 얘기하자고 할 거야!”
다음 날, 숙취로 허덕이는 와중에 그 질문이 맴돌았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이었다. 취기에 내뱉은 말이었지만 달리 나은 답변을 떠올릴 수도 없었다. 다시 생각해도 나라면 사소한 기대를 심어줄 것이었다. 지금은 힘들지만 너는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다 괜찮아질 것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위로나 그래도 인생은 살아볼 만하다는 식상한 조언 대신. 생명의 숭고한 가치보다는 당장 내일 우리가 함께할 설레는 일에 대해 말할 것 같았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버거운 어떤 날들을 버티는 방식이기도, 듣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사람은, 기대할 만한 일 하나만 있어도 살아져.’ 언젠가 소중한 이에게 했던 말.
하지만 역시 그건 아무래도 가벼웠다. 생면부지 타인의 ‘놀자’는 말에 누군가는 어이가 없어 역정을 낼 것이다. 실제로 저 너머에서 전화를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 검색창을 켰다. 눈에 띄는 제목 중에는 이런 게 있었다. ‘아들 잃은 엄마가 새벽마다 SOS 전화 받는 이유.’ 인터뷰에 따르면 12년 차 상담사인 그는 전화를 받으면 가장 먼저 위험한 장소를 벗어나도록 마음을 안정시키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준다고 했다. 지극히 현실적인 답변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하지만 한편, 다리 위가 아닌, 녹색이 아닌 수많은 ‘생명의 전화’들을 떠올린다. 경중은 다를지라도 우리 모두는 언젠가 한 번쯤 그 전화의 발신자이거나 수신자였다. 그때라면 나의 저 실없는 답변도 조금은 효용을 지닐는지도 모른다. “내일 삼겹살에 소주 어때!” “다음 달에 짧게 여행이나 다녀올까?” 가끔 인생이 너무 길게 느껴질 때, 기대할 만한 일을 스스로 만들거나 만들어준다. 맛난 밥 한 끼, 곧 도착할 택배, 내일 개봉할 영화, 주말의 설레는 만남, 몇 달 뒤의 휴가까지. 고작 기대 하나가 어떤 날의 우리를 살게 한다. 그 크고 작은 기대들을 함께 기워 연명하는 것이 어쩌면 대단치 않은 생존의 기술일까.
끌어내 주어서 끌려 나와 주어서 고맙다, 오늘도.
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