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15일 동아일보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극단적인 즐거움을 누리려고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 상대적으로 똑같은 크기의 괴로움과 불행에 빠지기 쉽다”고 했다. 그는 마약, 인터넷 등 중독에 빠지는 현대인들을 향해 잡념을 줄이는 명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요즘 정치가 시끄러운 건 정치인들이 빈 깡통처럼 내공이 없기 때문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올 4월 총선을 앞두고 이전투구를 벌이는 정치권을 향해 일갈했다. 진우 스님은 15일 서울 종로구 조계종 총무원장실에서 동아일보와 가진 신년 인터뷰에서 “내공이 없는 사람들이 꼭 큰소리치고, 소리 지르고 싸운다”라며 이처럼 지적했다. 진우 스님은 “정치권이 하나도 빼앗기지 않으려고 서로 싸우지만, 지금 양보한다고 영원히 빼앗기는 게 아니라는 것은 동서고금, 역사가 증명해 준다”며 “먼저 내려놓고 양보하는 사람이 이긴다. 그런데 내려놓지를 못하니까 양 진영이 이전투구로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우 스님은 또 “국가 원로들과 종교계가 갈등을 일으키는 정치인과 진영에 대해 어른으로서 꾸짖고, 또 양보하고 내려놓는 행위에 대해서는 용기를 주고 칭찬하는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치인들, 서로 다 가지려해… 평안이 없으니 치고받는 싸움만”
[신년 인터뷰]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 인터뷰
정치인 중에 무식한 사람 너무 많아… 양보하면 잃어버리는 게 아닌데
내공 없으면 꼭 큰소리치고 싸워… 양보하면 이긴다는 것 보여줬으면
인구감소는 민족 정체성의 문제… 최소한 출산율 1.0명은 넘어야
정치인 중에 무식한 사람 너무 많아… 양보하면 잃어버리는 게 아닌데
내공 없으면 꼭 큰소리치고 싸워… 양보하면 이긴다는 것 보여줬으면
인구감소는 민족 정체성의 문제… 최소한 출산율 1.0명은 넘어야
사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5일 서울 종로구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실에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 응한 진우 스님은 정치권을 향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당장 양보한다고 해서 영원히 잃어버리는 게 아닌데, 마치 영원히 빼앗기는 것처럼 여겨 다 가지려고 이전투구를 하니 안타깝다”며 “먼저 양보하는 쪽이 이긴다는 것을 국민이 보여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1시간 넘게 진행된 진우 스님과의 대담 진행은 이정은 부국장이 맡았다.
―내일(16일)이 해봉당 자승 대종사의 49재입니다. 지난해 비보를 듣고 많이 놀라셨을 것 같습니다.
“당일(지난해 11월 29일) 연락을 받고 당연히 굉장히 놀랐습니다. 동시에 한편으로 ‘아, 때가 왔구나’라는 느낌도 들었지요. 흔한 일은 아닙니다만, 우리 스님들이나 수행자들이 원적에 들기 전에 일반인으로서는 생각하지 못하는 말이나 행동을 할 때가 있어요. 그런 기록들이 많이 있지요. 그래서 생각보다는 담담하게 원적하신 곳(경기 안성 칠장사)에 내려갔고, 남기신 게송을 보며 ‘그때가 지금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사형(師兄)처럼 지낸 사이라 지금도 안 계신다는 게 잘 믿기지는 않지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정치인들이 찾아올 때마다 ‘제발 좀 내공을 키워라, 내적인 힘을 가져야 한다’고 말해주지요. 정치인들 중에 너무 무식한 사람이 많아요. 기억력은 좋은지 몰라도 본인이 (정보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그런 소화력이 좀 없어 보입니다. 내공이 없는 사람들이 꼭 큰소리를 치고, 소리를 지르고, 싸웁니다. 마음이 넉넉하고 자신감이 있는 사람들은 안 그러지요.”
사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사람이 자기 마음이 평안해야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여유가 생기고 양보도 타협도 거기서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치적 협상도 그래야 가능한 것이겠지요. 그런데 본인 마음이 평안하지 못하니까 당연히 여유가 없고, 그러니 치고받는 싸움에만 빠지는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정치인들이 명상 수행을 할 필요가 있다고 하셨다고요.
―지금 같은 정치 환경에서 그런 평정심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양보와 타협의 정치를 하려면 모든 걸 내려놓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정치, 정치인들은 내려놓지를 못해서, 서로 다 가지려고 양 진영이 생으로 부딪치고 있지요. 지금 어떤 걸 양보한다고 해서 영원히 뺏기거나 잃어버리는 게 아니라는 건 동서고금을 통해 이미 다 증명된 것입니다. 그러니 새옹지마,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당장 내가 양보하면 영원히 그걸 잃어버린다고만 생각하니까 못 놓는 거지요. 그러니 타협이 되겠습니까. 전쟁이 나는 거지요. 그런 용기를 가지려면 내공을 길러야 하고, 명상은 내공을 기르는 자기 수행에 도움이 됩니다. 국민께도 꼭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양보하는 정치인, 정치 집단을 지지하고 응원해줬으면 합니다. 먼저 내려놓고 양보하는 쪽이 이긴다는 것을 보여줬으면 하지요.”
사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워낙 바쁜 사람들이다 보니 차분하게 얘기할 시간은 별로 없었어요. 저보다 더 바쁜 사람들이니까요. 그저 단편적으로 ‘잘했으면 좋겠다’라고 한 정도지요. 물론 말이 쉽지, 정치가 그렇게 만만한 분야는 아니잖아요. 이 고해의 바다에 들어와서 얼마만큼 역량을 발휘할지 걱정스럽긴 한데…. 그래도 국운이 따르면 잘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가 마약, 인터넷 중독은 물론이고 이로 인한 정신적 빈곤 상태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너무 큰 행복을 원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은 동전의 앞뒤 면과 같습니다. 생기면 사라지고, 선이 있으면 악이 있고, 호(好)가 있으면 불호(不好)가 있기 마련이지요. 좋은 때가 있으면 나쁠 때도 있고, 해가 뜨면 반드시 지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밀물이 들어오는 시간이 있으면 당연히 썰물이 돼 나가는 시간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부처님 경전에는 ‘행복’이란 말이 없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지요.
“행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불행이라는 과(過)가 생기지요. 손등과 손바닥처럼 양면이 존재하는 곳이 바로 여기 사바세계지요. 사바세계의 업은 외부에서 오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 잡념과 관념을 줄여나가는 게 명상의 핵심이지요.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고 가능하면 더 큰 행복을 원합니다. 그런데 앞서 말한 대로 사바세계는 동전의 앞뒤 면이기에 큰 행복은 반드시 큰 불행도 가져옵니다. 행복하고 즐거움이 클수록 불행도 커지는 것이지요. 극단적인 즐거움을 누리려고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 상대적으로 똑같은 크기의 괴로움과 불행에 빠지기 쉽지요. 마약 중독이 그렇지 않습니까.”
사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현재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명상은 일본의 선(ZEN)이나 티베트 불교의 명상 등을 미국과 유럽에서 가져가 약간의 변형을 한 것이에요. 대부분 잠깐 마음을 쉬게 하고, 복잡한 마음을 잠시 끊어주는 방식이지요. 마음의 불을 잠시 꺼주는 효과는 있지만 이 방식은 근본적으로 마음을 치유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어느 정도 하다 보면 면역이 돼서 더 이상 소용이 없게 되는 경우가 생겨요. 우리 K명상은 명상을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스님들이 하는 간화선, 조사선까지 여러 단계로 나눈 것이에요. 차근차근 단계를 밟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놀라운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겁니다.”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불상 바로 세우기가 애초 예상과 달리 많이 늦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장 큰 마애불인 데다 불상의 얼굴이 정말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신라시대 기술력의 총화라고 할 수 있지요. 80t에 이르는 워낙 거대한 불상이다 보니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는 데다 관련된 행정기관이 여럿이다 보니 행정절차가 복잡해서 시간이 걸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불상을 일으키는 모의실험 등을 거쳐 내년에는 바로 세우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넘어져 계시던 부처님을 일으켜 세우면 왠지 우리나라 국운이 다시 부흥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국운’을 말씀하셨는데 한국은 저출산 문제가 심화하면서 ‘국가 소멸’ 위기에 놓였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불교를 비롯한 종교계가 이 문제를 푸는 데 우리 사회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저출산으로 인해) 우리의 국운은 지금 바닥을 치고 있는 형국입니다.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민족의 정체성 문제이기도 하지요.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빨리 역전시켜야 합니다. 이제 바닥을 쳤으니까 인구는 다시 증가해서 최소한 출산율이 1.0명은 넘어야 해요. 우리가 단일민족이던 시대는 이미 지났지요. (저출산 문제와 함께) 자살률도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 가장 높습니다. 젊은이들이 불안하고, 미래를 기약할 수 없으니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겁니다. 청년들의 마음을 이제는 정상적으로 순환시켜 나가야 합니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1961년 강원 강릉시 출생
△1978년 강릉 보현사에서 관응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수지
△1998년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청하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 수지
△2017∼2018년 총무원 총무부장·기획실장·호법부장·사서실장
△2018∼2019년 불교신문사 사장
△2019∼2022년 8월 조계종 교육원장
△2022년 9월∼현재 조계종 37대 총무원장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