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 다시 '1.0대'로
지난해 12월 13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외곽의 미클로시 러슬로 씨(52) 집에서 부인 리터 씨(39)와 자녀 라치카 군(10), 소피 양(3)이 함께 장난감 기차놀이를 하고 있다. 은행원인 미클로시 씨는 3년 전 정부 지원으로 집값의 3분의 1을 충당해 집을 마련했다. 부다페스트=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지난해 12월 13일 저녁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 외곽 단독 주택.
두 자녀의 장난감으로 가득 찬 집 안 곳곳을 소개하던 미클로시 러슬로 씨(52)가 “이 집을 살 때 정부에서 집값의 3분의 1을 지원받았다”면서 “둘째 딸이 곧 태어나 집을 넓혀야 할 때였는데 큰 도움이 됐다”며 웃었다.
은행원인 그는 2021년 ‘가족 주택 지원금(CSOK)’ 제도를 통해 집값 6000만 포린트(약 2억2800만 원) 중 1000만 포린트(약 3800만 원)를 빌렸다. CSOK의 대출금리는 최대 연 3%. 헝가리 기준금리가 10.75%인 것을 감안하면 부담이 거의 없는 수준이다. 또 ‘출산 예정 대출’로 1000만 포린트를 빌렸는데 대출 후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이자가 면제됐다.
헝가리의 경우 주택 정책 외에도 자녀가 4명 이상인 여성의 경우 평생 소득세를 면제해주는 등 각종 조세·재정 정책을 총동원했다. 호르눈그 아그네시 헝가리 문화혁신부 가족 담당 장관은 “가족 지원으로 출산이 증가하면 경제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며 “앞으로도 젊은 세대가 결혼과 출산을 미루지 않도록 지원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산예정 대출-주택수리 지원… 집값 걱정 덜어주니 출산율 1.52명
출산율 반등 이룬 나라들
〈2〉 헝가리, 파격 지원으로 출산율 쑥
출산 예정시 최대 20년 저금리 대출… 자녀 수 따라 상환 유예-원금 경감
넷째 낳은 여성은 평생 소득세 면제… “현금성 지원 장기효과 의문”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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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 넷 이상 여성 평생 소득세 면제
헝가리는 저출산 극복을 위해 지난 10여 년 동안 자녀가 있거나 출산 계획이 있는 가정에 현금성 지원을 집중했다.2016년 도입된 CSOK는 40세 이하 기혼 여성이 있는 가정이 집을 살 때 자녀 수에 따라 1500만∼5000만 포린트(약 5700만∼1억9000만 원)를 저리로 빌려주는 제도다. 상환 기간은 최대 25년이다. 둘째를 낳으면 1000만 포린트, 셋째를 낳으면 추가로 1000만 포린트를 원금에서 빼 준다.
세제 혜택도 다양하다. 자녀가 2명이면 월 4만 포린트(약 15만 원), 3명이면 10만 포린트(약 38만 원)의 소득세를 환급받는다. 2021년 기준으로 4인 가구의 월평균 수입이 약 59만 포린트(약 220만 원)인 헝가리에선 적지 않은 금액이다. 자녀가 4명 이상인 여성은 평생 소득세(15%)가 면제된다.
젊은 세대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유치원 교사로 일하다 육아휴직 중인 케셰르 번더 씨(34)는 2021년 1월 출산 예정 대출로 1000만 포린트를 빌렸다. 첫아이가 2022년, 둘째가 지난해 태어나면서 원금 30%가 탕감됐고, 상환은 6년간 유예됐다. 케셰르 씨는 “최근에 헝가리도 집값이 많이 올랐는데, 대출 덕분에 새집을 마련했다. 셋째도 가질 계획”이라고 했다.
● 자녀 셋이면 연차 7일 추가
헝가리는 현금성 지원 제도와 함께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직장인들은 자녀가 아프면 ‘부모 병가’를 쓸 수 있다. 병원에서 진료확인서를 받아 회사에 제출하면 연차를 따로 소진하지 않아도 된다.연차도 자녀 수에 따라 늘어난다. 자녀가 1명이면 2일, 2명이면 4일, 3명이면 7일의 연차를 더 쓸 수 있다. 탄초스 어드리언 씨(39)는 “외국계 기업 중 일부는 이런 제도를 달갑지 않게 여기지만 이는 가족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헝가리 정부의 방침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했다.
직장이 가정 친화적으로 변하면서 여성의 경력 단절도 줄었다. 2010년 74.2%였던 25∼49세 여성 고용률은 2022년 84.6%까지 올랐다. 지난해 9월 2년간의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한 미클로시 리터 씨(39)는 근무 시간을 전보다 2시간 줄여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한다. 그는 “회사에선 매달 일·가정 양립을 위해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묻는다. 육아 때문에 경력에 손해가 생기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 지속 가능성 두고 우려도
헝가리의 저출산 정책은 지난해 1월 당시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언급해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다. 하지만 이 같은 ‘헝가리 방식’을 두고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헝가리의 지난해 재정 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5.9%에 달했는데 상당 부분이 저출산 대책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철희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장(경제학부 교수)은 “현금성 지원은 출산을 고민하는 일부 계층에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장기적 효과는 장담할 수 없다”며 “헝가리 정책을 참고하면서 우리 실정에 맞는 저출산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다페스트=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