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판 햇빛 30% 이상을 전기로… 기존 실리콘 태양전지선 꿈도 못 꿔 한국 10년 가까이 기술 선도했지만… 사우디-中 공격적 투자로 치고나와 한국 연구비 삭감… “이러다 뒤처져”
울산과학기술원(UNIST)이 개발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UNIST 제공
한국이 10년 가까이 기술을 선도해 온 ‘차세대 태양전지’ 분야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최근 1년 사이 후발 주자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중국이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오며 선두를 뺏겼다. 일본도 이 분야 주도권을 되찾겠다고 나서면서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 새로운 차원의 태양전지
다만 이 차세대 태양전지가 대량생산돼 깔리려면 앞으로도 5년가량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큰 문제는 페로브스카이트가 수분과 열에 취약하다는 점. 이를 야외에서 10년 넘게 쓸 수 있도록 내구성을 높이는 동시에, 효율도 지금보다 더 끌어올려야 한다.
● 사우디·중국의 놀라운 부상
하지만 최근 1∼2년 사이 상황이 급격히 달라졌다. 그전까지 존재감 없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중국이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포스트 석유 시대’에 대비해 태양광 발전에 과감하게 투자 중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유럽 출신 과학자를 영입해 속도를 내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6월 사우디아라비아의 킹압둘라과학기술대(KAUST)는 페로브스카이트와 실리콘을 결합한 ‘탠덤 태양전지’ 효율을 33.7%로 끌어올리며 신기록을 썼다.
이 기록은 불과 다섯 달 만에 깨진다. 지난해 11월 중국의 거대 태양광 기업 론지솔라가 33.9% 효율을 공인받으며 세계 1위 자리에 오른 것. 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중국은 값싼 전기와 노동력을 무기로 실리콘 태양전지 시장을 장악한 지 오래다. 하지만 그동안 차세대 태양전지 기술에선 한참 뒤진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론지솔라는 차세대 태양전지 기술을 처음 선보인 지 1년도 채 안 돼 단숨에 선두로 치고 나왔다. 론지솔라 창업자 리전궈 회장은 “중국 태양광 산업은 지속적인 기술혁신을 통해 계속 세계를 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이제 우리나라가 차세대 태양전지 기술을 리드한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아직은 우리가 집중하면 따라잡을 수 있지만, 이대로 1년만 더 머뭇거리면 상당히 어려워질 거다. 워낙 기술 진화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일본은 ‘에너지 안보’로 접근
한국의 이런 흐름은 일본과도 대비된다. 일본은 지난해 4월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페로브스카이트 대량 생산체제 구축에 대응하겠다”라고 밝힌 데 이어 올해 관련 예산 548억 엔(약 5000억 원)을 편성했다.기존 실리콘 태양전지는 대부분을 중국 수입에 의존해야 하지만, 페로브스카이트는 원료부터 완제품까지 모두 국산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리콘 태양전지와 달리 제조 과정이 간단하고 전기가 적게 들어 친환경적이란 점도 일본 정부가 적극 나서는 이유다.
무엇보다 또다시 중국에 산업 주도권을 뺏길 순 없다는 경계심이 작용했다. 일본 자원에너지청의 이노우에 히로오 국장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과거 실리콘 태양전지에서) 우리는 기술에서 승리했지만 사업에서 패했다”며 “(차세대 태양전지는) 투자 규모와 속도에서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 인프라를 공격적으로 확대 중인 미국 정부도 차세대 태양전지 지원에 나섰다. 지난해 4월 미국 에너지부는 관련 프로젝트에 1800만 달러(약 242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