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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아직 브릭스 공식가입 아니다”… 美 블링컨-빈 살만 회동 8일 만에 번복

입력 | 2024-01-18 03:00:00

사우디 장관, 다보스서 가입 부인
美中 갈등 고조에 고심 깊어진 듯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달 초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회원국으로 가입했다고 발표했다가 16일 돌연 “아직 공식 가입은 아니다”라며 번복했다.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진 데다 중동에서 무력 충돌까지 확대되면서 ‘줄타기 외교’를 해온 사우디의 고심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마지드 알 까사비 사우디 상무장관은 이날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 패널로 참석한 자리에서 “사우디는 브릭스에 초대받았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가입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앞서 2일 파이살 빈 파르한 알 사우드 사우디 외교장관이 국영TV에 출연해 “브릭스는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유익하고 중요한 통로”라며 가입을 공식화한 것을 뒤집는 발언이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사우디 정부는 상무장관의 다보스 발언과 관련해 어떤 공식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2일 외교장관 관련 보도들은 사우디 매체들의 홈페이지나 소셜미디어에서 모두 삭제된 상태다.

로이터통신은 “사우디의 입장 번복은 미중 간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사우디가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가는 게 미국의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상황에서 나왔다”고 분석했다. 미국으로선 ‘전통 맹방’인 사우디가 중국이나 러시아와 밀착 행보를 보이는 게 달가울 리 없다. 까사비 장관의 발언이 8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사우디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접견한 뒤 나왔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브릭스를 반(反)서방 블록이자 영향력 확대를 위한 발판으로 만들기 위해 공을 들여 왔다. 지난해 8월 남아공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그 결실로 사우디를 포함해 아랍에미리트(UAE)와 이집트, 이란, 에티오피아, 아르헨티나 등 6개국을 새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로 승인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아르헨티나의 하비에르 밀레이 신임 대통령이 가입을 철회한 데 이어, 사우디마저 회원 가입을 유보해 분위기가 반전됐다. UAE, 이집트 등 나머지 4개국의 회원 자격은 올 1월 1일부터 발효됐다.

사우디는 전통적으로 우호 관계를 유지해 온 미국이 이전보다 걸프 지역 안보 등에 개입하려는 의지가 약하다는 판단 아래 최근 독자적인 외교 노선을 추구해 왔다. 하지만 중국, 러시아와 미국의 갈등이 장기화되며 ‘외줄타기’가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외신 등은 “사우디가 브릭스 가입의 잠재적 이점과 미국과의 오랜 관계를 놓고 고심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