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상 정치부 차장
“용산 대통령실 참모들을 노골적으로 배려했다.”
한 여당 의원은 16일 전격 발표된 국민의힘 공천 룰을 이같이 해석했다. 그는 험지와 텃밭에 각기 다르게 적용된 경선 여론조사 일반 국민 비율에 주목했다. 용산 참모를 비롯해 검사 출신 인사들은 국민의힘 현역 의원이 있는 서울 강남이나 영남을 노리는 상황이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험지인 수도권(서울 강남 3구 제외)과 호남 충청 등에선 당원 20%, 일반 국민 80%로 경선을 치른다. 텃밭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대구·경북(TK), 부산·울산·경남(PK) 등에선 당원과 일반 국민을 각각 50% 비율로 정했다. 이 의원은 “당이 개혁 보수 성향은 떠나고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는 강성만 남은 ‘짠물 당’이 됐다”며 “짠물 당원이 용산발 출마자들에게 표를 몰아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천 룰이 공관위 첫 회의에서, 3시간 40분 만에 확정된 것을 두고도 의심을 키운다. 공관위는 공천 룰을 발표하며 “여당 역사상 처음으로 시스템 공천 제도를 도입했다”고 홍보했다. 디테일까지 잘 짰다는 자평이지만 역으로 잘 짜인 각본 아니냐는 의심이 나온다. 공관위에는 친윤(친윤석열)계 핵심인 이철규 의원이 포함돼 있다. 그리고 공관위원 절반이 당 사정을 모르는 법조인이나 전문직 외부 인사로 구성돼 있다. 첫 회의날 아침 한 외부 공관위원은 “오늘부터 들여다보겠다”고 했는데 의견 수렴이 충분했는지도 의문이다.
한동훈 위원장은 발표 다음 날 “룰을 정할 때 생기는 당연한 결과”라며 “공천 룰이 공개되지 않거나 사람에 맞춰서 하면 문제”라고 해명했다. 일부 중진들도 “쇄신 취지에 맞게 감수해야 한다”는 의견도 냈다. 공천 룰 발표 다음 날 열린 한 위원장과 4선 이상 의원 회동에서도 특별한 마찰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비주류의 의심과 중진의 반발을 흘려보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검찰 출신 ‘검(檢)수저’들은 깃발 꽂으면 되는 텃밭에 보내느냐”, “출마에도 골품제가 있어 검사 출신은 성골, 관료 출신은 6두품”이라는 당내 정서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려를 키우는 일도 벌어졌다. 한 위원장은 17일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서울 마포을 지역구의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 맞대결 카드로 김경율 비상대책위원의 출마를 공개했다. 현역 서울 마포을 당협위원장 면전에서 이 같은 사실을 알리자 곧장 “낙하산 공천”이란 반발이 터져나왔다. 공천 룰 확정 발표와 다음 날 터진 낙하산 반발이 내리꽂기 공천의 예고편이 아니어야 한다.
박훈상 정치부 차장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