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에 합병증 사망… 부모의 눈물 당뇨 안고 태어나 하루 4회씩 주사… 용량 조절 실패땐 합병증 위험 현행법상 보건교사가 주사 못놔… 부모들 아이 주사 맞히려 생업 포기
중증·난치성(1형) 당뇨를 앓고 있는 박율아 양(8)이 16일 오전 혈당을 조절하기 위해 세종시의 한 초등학교 보건실 침대에 앉아 직접 인슐린 주사를 놓고 있다. 세종=김태영 기자 live@donga.com
여덟 살 난 막내는 아직도 매일 제 형을 찾는다. 형이 떠난 지 여덟 달이 지났건만. 15일 서울 은평구의 자택에서 만난 황유순 씨(43)는 사진 속 셋째 아들 이주환 군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사진을 버리려고 했어요.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져서. 그런데 막내가 말리더라고요. ‘형아 기억이 없어질까 봐 싫다’면서….”
주환이는 평생 중증·난치성(1형) 당뇨(소아당뇨)를 앓다가 지난해 5월 열다섯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당뇨 합병증이었다. 스스로 혈당 조절(인슐린) 주사를 놓다가 용량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서 얻은 합병증이었다. 유순 씨는 “만약 법이 지금 같지 않아서, 학교에서 보건교사 선생님이 주사를 놔줄 수 있었다면 주환이가 덜 아프지 않았을까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 학교서 직접 주사 놓다가 합병증 사망
그러다 지난해 5월 4일 ‘그날’이 왔다. 새벽에 집에서 의식을 잃고 응급실로 옮겨진 주환이는 잠시 정신을 차리더니 “엄마, 나 검사 끝나면 맛있는 거 사줘요”라며 애교를 부렸다. 평소 못 먹는 단 음식을 사달라는 그 말이 주환이의 마지막 말이 됐다. 주환이는 다음 날 뇌사에 빠졌고, 3주 후 연명치료를 중단했다. 유순 씨는 “정부는 늘 ‘아이들을 잘 치료해주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필요할 땐 곁에 없었다. 다시는 주환이처럼 떠나는 아이가 없게 해달라”고 말했다.
● 엄마는 생업 포기하고 점심마다 ‘주사 등교’
소아당뇨 치료의 사각에서 고통받는 아이는 주환이만이 아니다. 16일 오전 11시 반, 세종시 한 초등학교 보건실 침대에 앉은 박율아 양(8)은 덜 여문 손으로 아랫배를 붙들고 주삿바늘을 꽂았다. 점심을 먹기 전에 인슐린을 투약한 것. 보건교사 이은희 씨는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 씨는 “여유가 있을 땐 제대로 주사하는지 조언이라도 해줄 수 있지만, 다른 업무와 겹칠 때면 꼼꼼히 못 살필 때가 있다”며 아쉬워했다.경남 함안군에 사는 강성빈 양(14)도 비슷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어머니 서미경 씨(39)는 성빈이가 소아당뇨로 확진된 2017년부터 어린이집 교사 일을 그만두고 매일 점심마다 학교를 찾아 인슐린 주사를 놔줬다. 사는 곳에 소아당뇨를 제대로 관리하는 병원이 드문 탓에 성빈이와 엄마는 서너 달마다 고속철도(KTX)를 타고 서울에 있는 병원에 다닌다. 11일 취재팀과 만났을 때도 성빈이는 ‘5분 진료’ 후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서둘러 진료실을 나와야 했다.
소아당뇨 환자의 부모 중 한 명이 경제 활동을 포기하는 경우가 잦은 또 다른 이유는 혈당 관리가 24시간 이어지기 때문이다. 15일 오전 3시 21분, 율아의 혈당치가 떨어져 자동 경보가 울리자 부모가 급히 깨워 포도 주스를 먹였다. 잠결이라 주스 섭취를 거부하는 아이를 달랜 부모는 이후로도 30분 넘게 아이의 혈당 그래프를 지켜봐야 했다.
● “마약 의심 신고 받기도”… 편견과 싸워야
성빈이는 학교에서 인슐린을 주사할 때 친구들이 볼세라 조용히 화장실로 들어간 적이 있다. 위생도 문제지만, 혹시 급성 합병증으로 쓰러져도 자칫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율아의 아버지도 딸이 식당에서 구석 자리를 찾으며 “여기선 주사 놓는 거 안 보이겠다”고 말해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율아는 요즘 “나쁜 사람을 잡아서 혼내주는 멋진 경찰관이 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른다. 율아 아버지의 고민은 깊어진다. 어떻게 하면 상처가 되지 않게 말할까. 우리나라에선 소아당뇨가 ‘업무수행에 큰 지장이 있는 질병’으로 분류돼 경찰관 결격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장하얀 기자 jwhite@donga.com
세종=이정훈 기자 jh8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