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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조 규모로 불어난 정부 ‘마이너스 통장’…한은 “매주 잔액 체크”

입력 | 2024-01-18 05:59:00

(자료사진) /뉴스1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대정부 일시대출에 한층 강화된 조건을 붙였지만 원칙 외 활용을 경계한 ‘옐로카드’ 격으로 실효는 의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은은 법률로 열어놓은 정부의 단기 자금 조달 수단을 차단하긴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18일 한은에 따르면 금통위는 지난 11일 회의에서 ‘2024년도 대정부 일시대출금 한도 및 대출 조건’을 의결했다. 한은 일시대출은 정부가 세입과 세출 사이 시기가 맞지 않아 일시적으로 자금 부족을 겪는 경우 63일짜리 단기채권인 재정증권과 함께 택할 수 있는 단기 자금 수혈 수단이다.

재정증권은 발행 때마다 입찰 공고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한은 대출은 과정이 비교적 복잡하지 않아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처럼 꺼내 쓸 수 있다. 물론 돈을 빌리게 된 세입 등의 사유가 소멸하면 지체 없이 갚아야 한다.

금통위는 이번 의결에서 이러한 대정부 대출 조건을 강화했다.

지난해 의결 당시에는 ‘정부는 일시적인 부족자금을 한은으로부터의 차입에 앞서 재정증권 발행을 통해 조달하도록 적극 노력해야 한다’고 돼 있었으나 이번에는 ‘이를 위해 일시차입금 평균 잔액(평잔)이 재정증권 평잔을 상회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또 ‘한은 일시차입이 기조적인 부족자금 조달수단으로 활용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는 조건 뒤에 ‘평균 차입일수 및 차입누계액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문구를 덧붙였다.

정부가 일시차입을 위해 상의하는 경우 작년에는 ‘사전에 충분히’ 협의할 것을 요구했으나 올해는 ‘매주, 정기적으로’ 협의해야 한다고 수정했다. 종전에 정부는 2~3일 전에도 한은 측에 협조를 구했으나 이제는 적어도 1주 전에는 협의를 가져 예측 가능성을 높이자는 방침이다.

지난해 세수 부족에 시달린 정부가 끌어다 쓴 한은 일시대출금은 누적 117조6000억원에 달했다. 이에 국회 국정감사 등에서 발권력 남용이라는 비판이 쏟아지자 규정을 손질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행 국고금관리법은 정부가 일시 자금 부족을 겪을 경우 재정증권을 우선 발행해야 한다고 명시 중이다. 그러나 국회는 금통위가 제시한 일시대출의 부대조건이 다소 추상적이어서 법률의 취지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사실상 정부의 일시대출을 유도하게끔 돼 있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올해도 세수 전망이 밝지만은 않아 일시대출이 부담스러운 수준으로 지속될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올해 경기가 개선될 것이기 때문에 작년 같은 세수 부족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밝혔으나 감세 기조에 따른 세입 축소 우려는 사라지지 않는 모습이다. 앞서 국회 예산정책처는 올해 국세수입을 정부 추계보다 6조원 낮은 361조4000억원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여기에 ‘일시차입금 평잔이 재정증권 평잔을 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조건의 경우 월간이 아닌 연간 단위여서 통제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일시차입에 대한 비판이 계속됐던 지난해만 해도 연간 기준 재정증권 평잔 7조6000억원, 한은 일시대출 평잔 4조4000억원으로 금통위가 내건 조건을 충족했다.

다만 한은은 이번 의결의 목적이 대정부 일시대출을 차단하는 데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번 조치는 ‘일시대출보다 재정증권을 우선한다’는 법률 원칙을 금통위 의결 부대조건에 더 잘 반영하는 데 있으며, 오히려 대정부 일시대출은 재정 운용의 묘를 살리는 측면도 있어서 한은 독단으로 막아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취지다.

한은 관계자는 “재정증권 평잔과 일시차입금 평잔이라는 두 지표가 핵심이니 이들 지표에 유의해 일시차입을 기조적으로는 활용하지 말라는 취지”라면서 “법률에서 쓰라고 열어준 제도를 쓰지 못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대정부 일시대출에는 장단점이 모두 있어 한은이 독자적으로 차단하기 곤란하다는 입장은 앞서 이창용 한은 총재도 밝힌 바 있다. 이 총재는 지난해 국감에서 “(한은) 입장에서 세수가 한 달 뒤 들어오기 때문에 지금 쓰겠다고 하면 그것(일시대출)을 하지 말라고 하기 굉장히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어 “(일시대출에는) 정부가 중앙은행의 발권력에 의존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단기 유동성을 조절할 때 60일 내에서는 더 효율적이라는 장점도 있다”며 “이를 아예 금지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이런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국회에서 논의를 통해 제도를 마련해 주셔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정 당국인 기획재정부는 변경된 부대조건을 다 따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모든 내용을 그대로 이행할 수 있다”며 “이전에도 일시차입금이 재정증권 평잔을 밑돌도록 노력해 왔고 실무적으로도 협의해 왔다”고 전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시대출 조건을 실질적으로 강화했다 보긴 어렵고 (한은이 정부에) 강제할 근거도 없다”며 “본질적으로는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중앙은행 대정부 일시차입을 입법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세종=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