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런던을 상징하는 빅벤이 노스페이스 재킷을 입고 포즈를 취한 영상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퍼지며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런던브리지를 가로질러 마치 빨래처럼 걸려 있는 거대한 첼시 유니폼, 자동차 뒤에 매달려 파리 거리를 새빨갛게 물들이는 로레알 립스틱, 속눈썹을 달고 정차역마다 메이블린 마스카라로 단장을 하는 뉴욕 지하철, 두바이 부르즈 칼리파만큼이나 높게 세워진 바비인형까지. 현실적인 사진과 영상이 두 눈을 사로잡지만, 사실 이 모든 영상은 가짜다.
김신엽 한양대 광고홍보학과 겸임교수·㈜DS LAB 소장
이들 영상은 ‘FOOH’라 불린다. 가짜라는 의미의 ‘Faux’와 옥외광고를 뜻하는 ‘OOH’(Out of home)가 결합한 합성어로 실사 배경 위의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CGI)로 구현된다. 현재 FOOH를 선도하는 디지털 아티스트 이언 패드햄은 이 새로운 형태의 옥외광고를 설명하기 위해 용어를 제안했으며 특정 장소와 결합한 브랜드의 유쾌한 상상력은 많은 이들의 관심과 흥미를 끌고 있다. 장소와 결합해 브랜드를 재현하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FOOH는 훌륭한 옥외광고가 된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FOOH가 가상과 현실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실재를 탄생시키는 방식으로서, 가장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다운 창작물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가상(Virtual)이란 현실(Actual)을 보조하거나 경험을 증강시키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FOOH는 가상의 고유성을 인정하고 융합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새로운 옥외광고라는 실재(Real)를 만들어 낸다. 피에르 레비가 가상은 실재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대립한다고 말한 것같이, 가상이 현실과 상호작용하며 현실과 함께 실재를 구성하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떨어져 있는(현실) 가족과 화상통화(가상)를 통해 안부를 전하며 유대감(실재)을 유지하듯 말이다.
빅벤이 사실 노스페이스 재킷을 입은 적이 없듯 FOOH는 실체 없는 허구적 이미지, 다시 말해 가짜다. 그러나 이언 패드햄은 FOOH가 사람들을 속이는 게 아니라 브랜드가 추구하는 스마트 콘텐츠 전략의 일부로서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도구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즉 FOOH는 사실을 고지하는 게 아니라 감각과 의미를 전달하는 스토리텔링이라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연출된 상황이라는 것을 알릴 필요는 있다.
지금까지 가상과 현실에 관한 논의가 경계의 흐릿함 혹은 현실을 보완하는 가상에 관한 논의였다면 FOOH는 가상과 현실을 연결해 또 다른 실재를 창조한 새로운 사례를 제공한다. 그리고 증강현실(AR) 등을 통한 개인적인 융합 체험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하여 모두가 체험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디지털 컨버전스를 고도화한다.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일 때 더욱 흥겹듯이 남은 것은 이 새로운 디지털 컨버전스의 거리에 공감한 이들의 참여다. 이렇게 가상의 현실과 공간이 연결될 때, FOOH는 도시 브랜딩이라는 또 다른 가능성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
김신엽 한양대 광고홍보학과 겸임교수·㈜DS LAB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