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입사 돗토리 신임 사장 ‘지방전문대-타회사 출신’ 편견 넘어 “안전-서비스가 전부… 나답게 할것” 항공업계, 日내서도 보수성 강해… “성차별과 싸우는 日에 상징적 사건”
여성 승무원 출신 최초로 일본 주요 항공사 ‘일본항공(JAL)’의 수장에 오른 돗토리 미쓰코 사장(오른쪽)이 17일 기자회견에서 아카사카 유지 회장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사히신문 제공
포즈를 취해 달라는 카메라 기자들의 요청에 눈을 동그랗게 뜬 그는 좀처럼 표정을 펴지 못했다. 마이크를 잡고서도 꿀꺽 침을 삼키고 숨을 크게 들이켜 쉬더니 그제야 찬찬히 입을 뗐다.
“항공사는 기본이 안전과 서비스입니다. 이 두 가지는 제가 가진 경력의 전부입니다. 앞으로도 저답게 해 나가겠습니다.”
소속 직원만 3만6000명. 일본을 대표하는 73년 역사의 국적기 항공사인 ‘일본항공(JAL)’에서 17일 신임 사장으로 임명된 돗토리 미쓰코(鳥取三津子·60) 전무는 짤막하지만 정론(正論)으로 포부를 밝혔다. 일본 내에서도 보수적이라 평가받는 항공업계에서 여성 승무원 출신이 항공사 사장으로 발탁되는 첫 순간이었다.
● 여성, 지방대… 허들을 뛰어넘다
1964년 후쿠오카현에서 태어난 돗토리 사장은 나가사키 갓스이(活水) 여자단기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뒤 1985년 도아국내항공 객실 승무원으로 항공업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가 나온 대학은 2005년 폐교됐으며, 훗날 일본에어시스템(JAS)으로 이름이 바뀌었던 도아항공도 2006년 일본항공과 통합되며 흡수 합병으로 사라졌다.
비행기 하면 스튜어디스를 떠올리듯, 항공사는 여성 승무원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하지만 여성이 임원급 고위직에 오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일본항공은 임원 32명 가운데 단지 7명만 여성이다. 참고로 대한항공은 임원 74명(사외이사 제외) 가운데 여성이 상무 2명에 불과하다.
돗토리 사장에겐 ‘여성’만 장애물이 아니었다. 지방 2년제 대학 졸업이나 피합병회사 출신이란 점도 회사생활엔 힘겨운 꼬리표였다. 하지만 그는 당당했다. 한 인터뷰에서 “빨리 사회에 나가고 싶어 2년제를 택했다. 놀 틈이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본항공 내에 한때 ‘JAL 출신’과 ‘JAS 출신’으로 파벌이 생기기도 했지만, 돗토리 사장은 다양성을 조직문화 개선에 적극 활용했다.
● 조직 논리보다 “고객이 정말 원하냐” 강조
입사 뒤 줄곧 승무원으로 일한 돗토리 사장은 2020년 객실 본부장에 취임한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기쁨을 누릴 새도 없었다. 승무원들이 한 달에 2, 3일밖에 비행을 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기 때문이다.
돗토리 당시 본부장은 우선 낙담하여 일자리 잃을 걱정에 빠진 직원들의 기를 살리는 게 먼저라고 판단했다. 기업이나 관공서 등과 연계해 콜센터, 화물 작업, 사무 등으로 파견을 보냈다. 이렇게 직원들의 고용을 유지한 공로로 그는 지난해 6월 최고고객책임자(CCO)가 됐다.
돗토리 사장은 입사 때부터 잊지 못하는 사건이 있다. 입사 첫해인 1985년 525명이 사망한 ‘JAL 123편 추락 사고’다. 그는 “당시 충격을 지금도 가슴에 새기고 있다. 우리는 안전의 중요성을 계승할 책임감이 있다”고 했다.
항공업계에서는 객실서비스 총책임자였던 돗토리 사장이 2일 도쿄 하네다공항 JAL 화재 사건에서 승객들을 무사히 대피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사장에 올랐다는 의견도 나온다. 돗토리 사장 역시 “모두를 구출하겠다는 강한 사명감이 있었다”며 “고객들이 협조해 준 덕분이지만 (당시 탑승한) 승무원 9명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남녀 차별이 여전한 일본 사회에서 돗토리 사장의 취임은 단순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일본은 상장사의 여성 임원 비율이 지난해 기준으로 13.4%에 그친다. 한국 100대 기업은 6.0%에 불과하다. 돗토리 사장은 “경력을 쌓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성 직원들에게 (저의 승진이) 힘과 용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