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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 미술 연구와 국제교류가 교차하는 장으로”[영감 한 스푼]

입력 | 2024-01-19 10:27:00


16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김성희 관장을 만났습니다. 김 관장은 “한국 미술에 새로운 담론 발굴이 시급하다”며 “미술관을 ‘계급장’ 떼고 공부하는 기관으로 만들겠다”고 말했습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지난해 9월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취임한 뒤 100여 일 만에 언론 인터뷰에 나선 김성희 관장과의 대화를 소개합니다. 김 관장은 일주일 전 2024~2026년 미술관 운영 계획에 관한 밑그림을 밝히기도 했는데요.

그 저변에 김 관장의 어떤 구상이 있는지, 또 그러한 계획은 어떤 경험에서 나오게 된 것인지 들었습니다. 요약하면 ‘미술관은 계급장 떼고 공부하는 기관’으로 만들고, ‘해외 석학을 초청해 한국 미술을 국제적으로 알린다’는 것을 김 관장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미술관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궁금한 분들을 위해 최대한 자세히 소개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Park Jung Hoon



“국립현대미술관, 계급장 떼고 공부하는 기관으로”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이 대학을 갓 졸업한 큐레이터였을 때 입니다. 김 관장은 백남준의 누님이 하던 ‘미건 갤러리’에서 일을 시작했죠. 이 갤러리에서는 백남준의 일도 맡았고, 그가 한국에 오면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백남준은 김 관장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김 선생, 이 커리어 갖고 안돼. 내 전시를 하려해도 그렇고 말이야. 유학을 다녀와.”

김 관장은 “제가 지금 결혼도 했고 애도 낳아야 해서 외국에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라며 난처한 기색을 표했습니다. 그러자 백남준은 다시 “단기간 인턴이라도 하라”며 그 자리에서 뉴욕 현대미술관(MoMA) 큐레이터 바바라 런던에게 추천서를 보내줍니다. 백남준의 독려로 김 관장은 모마에서 인턴을 하고, 이것이 뉴욕대에서 공부와 디아 센터 인턴십으로 이어집니다.

수십 년 뒤 국립현대미술관장이 된 그는 미국과 한국, 또 대학 강단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술 이론과 미술사가 근간이 되어야한다’고 보고 있었습니다.

― 신년 인사에서 ‘연구’와 ‘출간’을 중심으로 하는 기관을 만들겠다고 언급했습니다.
“미술관에 오고 한국에 대한 뜨거운 관심에 놀랐습니다. 현장에서 큐레이터로 일할 때 ‘어떻게 한 번 만날 수 없을까, 명함이라도 건네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이제 미술관으로 찾아오고 있어요. 이런 관심이 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결국 본질적인 컨텐츠가 뒷받침이 되어야하고, 미술에서는 미술 이론과 미술사가 이 역할을 합니다.”

― 중·장기 프로젝트에서 ‘한국 근현대미술 Re-프로젝트’를 가장 먼저 발표한 것도 그러한 중요성 때문인가요?
“미술관에 연구 분과가 있었는데 그간 약화되어 있었죠. 학예사든 학예관이든 ‘계급장’을 떼고 실험미술이라면 1970·80년대, 혹은 1990년대, 2000년대까지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담론을 활성화하려는 것입니다. 이런 연구가 토대가 되어야 해외 석학을 한국에 초청하는 ‘MMCA 리서치 펠로우십’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겠죠.”

― ‘계급장을 떼고’라는 표현은 수평적 조직 문화를 강조하려는 취지인가요?
“미술관이 그간 관장과 학예실장이 공석이었고, 젊은 학예사와 학예관 사이 소통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은 단호히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한국 미술, ‘신형상’ 등 세부 사조 들여다봐야”
김 관장의 구상은 결국 한국 미술사를 다시 제대로 연구해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단색화’를 언급하면서 “전시도 열리고 박서보 작가도 열심히 뛰었지만, 그것을 세계에 알린 건 결국 조앤 키 같은 연구자들이 저명한 출판사에서 출간한 연구서”라며 “이제는 단색화가 아닌 다른 담론을 연구해 제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단색화 말고 어떤 사조가 있을까? 인터뷰 과정에서 김 관장은 ‘신형상’과 ‘개념미술’, 그리고 1993년 한국에서 열린 휘트니 비엔날레와 그것이 미친 파급효과 등을 언급했습니다.

― 지난주 중기 운영 계획을 발표하고 ‘해외 미술품 소장 강화’가 가장 주목을 받았는데, 아직은 실현 단계까지 많은 과정이 필요해보입니다. 국내 미술계에서는 국내 작품 소장 기준도 궁금할 것 같습니다.
“우리 미술계에서 이뤄졌던 여러 사조에 대한 정확한 연구가 부족합니다. 단색화도 아직 담론이 나온지 얼마 안 됐고, 6·70년대 이후 8·90년대 민중미술도 있지만 ‘신형상’이라는 디테일한 사조가 있었어요. 또 개념미술도 많이 나왔고 이런 것들에 대한 연구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런 연구를 기반으로 책이 나오고 전시가 이뤄지면서, 중요한 활동에 관련된 작품은 미술관이 소장하는 순서가 되겠지요.

― 결국은 모든 바탕에 연구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시군요.
“네 사실은 모든 것이 서로 연관되어 있어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전시 보셨나요? 담당 학예사가 이론을 공부했습니다. 이론이 뒷받침되면 전시가 다릅니다. 단순히 작품이 좋다는 느낌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학예사가 책을 읽고 공부하면 알찬 전시가 만들어지죠. 상업화랑도 대안공간도 아닌 미술관에서는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반짝반짝한 기획사 전시, 관객들이 줄 서서 보는 전시는 그런 분야에서 풀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건 정말 국현만 할 수 있다’거나, 아이들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전시를 보여줘야 하고, 그런 것들이 저는 참다운 대국민 서비스라고 생각합니다.”

― ‘MMCA 리서치 펠로우십’은 이름을 들어도 알만한 해외 석학을 초청하고 한국에 3~6개월 머물게 하면서 한국 미술을 연구하게 한다는 프로젝트입니다. 여기서 염두에 두고 있는 해외 석학은 어떤 정도의 인물인가요?
“이미 관심을 표한 인물도 있지만, ‘빅 네임’을 모시기 위해 신중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올해 봄쯤이면 윤곽이 나올텐데, 두 가지 조건 ‘빅 네임’과 ‘한국 미술에 관심이 있는 학자’를 충족시키려고 합니다.”

― ‘빅 네임’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의 급을 이야기하는 것인가요?
“해외 유력 대학의 미술사 교수들, 혹은 유명한 출판사에서 미술사 관련 저서를 5~10권 출간해서 미술사에 언급이 된 분을 말합니다. 국제적으로 큰 전시의 기획을 맡았던 큐레이터 중에서도 가능하고요. 다시 말하면 책으로 영향력이 크거나, 중요한 전시를 기획했던 인물이죠.”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Park Jung Hoon



“한국 기업, 자국 미술에도 관심을”
― 미술관의 연구와 해외 교류, 두 축이 중요해 보이는데 이렇게 보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스위스 베른에서 1969년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이 ‘태도가 형식이 될 때’라는 역사적인 전시를 만들었어요. 작가의 작업실을 미술관에 가져와 보여주는 전시였는데, 참신한 방식이었지만 그만큼 돈이 많이 들었죠. 그런데 당시 유럽의 경제 상황이 열악했거든요. 이 전시를 미국 필립모리스와 정부가 펀딩을 해서 히트를 했어요

여기에 요셉 보이스 같은 유럽 중요 작가와 함께한 참여 작가의 50%가 미국 작가였습니다. 미국 미술을 프로모션하는 장이 됐다는 의미죠. 우리도 자국 미술을 전략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업 후원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직접 받을 수는 없고, 국립현대미술관 문화재단을 통해 기부를 받습니다. 다만 국내 기업의 해외 미술관 후원은 활발한데 국내는 아직 미술관에서 더 아쉬운 상황입니다. 해외에도 세일즈를 해야 하니 당연한 것이지만 이제는 집에서도 잘 먹고 살아야죠.”

― 미술 시장에는 기업 후원이나 이벤트가 활발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2회까지 열린 프리즈에 브랜드들의 엄청난 마케팅도 화제였고요.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미술 시장도 중요하지만 국내 참여자나 기업도 더 장기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프리즈와 해외 갤러리는 결국 자신들이 갖고 있는 걸 팔기 위해서 온 것이거든요. 작품을 팔고 파티를 하면서 세련된 선진 미술 문화를 보여준 것으로 그들은 책임을 다 했고, 그걸 뭐라 할 수도 없죠.

다만 우리는 무엇을 얻을 것이냐를 생각해야 됩니다. 프리즈 아트페어가 아직 초반이니 기업들도 많이 신경을 쓴 것 같기는 하지만, 지속적으로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은 듭니다. 한국 작가의 해외 진출, 한국 미술을 알리는 것에 대한 요구도 해야죠.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 미술을 해외에 알리는 것이 역할이지만 국가 예산은 갑자기 크게 키울 수가 없는 한정된 것이거든요. 그런 점에서 미술관이 전시 컨텐츠를 만들거나, 이런 것을 해외로 보낼 때 기업이 역할을 해 준다면 훨씬 더 좋겠죠. 해외 작가와 콘텐츠 후원도 중요하지만, 같은 비중으로 한국 미술의 해외 교류를 조금 더 신경 써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기하학적 추상미술’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작가와 협업이 더 편하고 즐거워”
― 상업 화랑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습니다.
“네. 그런데 상업 갤러리에서 일을 하면서 보니, 젊은 작가는 돈이 안 되어서 현실적으로 전시가 불가능했어요. 수백만 원하는 작품을 팔아서 갤러리를 유지하기는 어렵거든요.

그러다 뉴욕 대안공간에서 열리는 실험적 전시들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1999년 ‘사루비아 다방’을 만들었어요. 그러다 건강 악화(암 투병)로 손을 놓고 치료를 받은 뒤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다시 비영리 대안공간인 ‘캔 파운데이션’을 만들었죠.”

― 갤러리에서 비영리기관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 눈에는 갤러리 오너의 삶이 행복해보이지 않았어요. 화려하지만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하고…. 작품을 사라고 설득하는 것보다는 작가와 대화하고 일하는 게 더 재미있고 만족도도 커서 ‘아 나는 이쪽이구나’ 했어요.

물론 저도 비싼 옷 입고 최신형 차 몰고 그렇게도 하면 좋겠지만 관심이 잘 안가요. 지금 입고 있는 옷도 남성용 셔츠에요. 그냥 단정하게만 입고, 홈쇼핑에서 3+3 주는 옷 사는 게 좋고요.

친구들이 갤러리를 열면 밀어주겠다고 했지만, 저는 ‘야 백 하나 살 바에 작가 도와’라고 하는게 더 좋아요. 그래서 제 선택에 후회는 없습니다. 물론 사루비아 다방을 하다가 몸이 아플 때 조금 후회했지만 아마 화랑했으면 더 아팠을 거예요.(웃음)

― 미술관이 낯선 일반 관객에게 국립현대미술관은 어떤 기관이 될까요?
“세대를 아우르는 전시를 꼭 해보고 싶습니다. 영화를 보고 감동해서 울고 웃듯, 그런 감동이 있는 전시를 해보고 싶어요. 그러려면 전시 서문과 설명글도 쉬워져야 하고 더 친절해져야겠죠. 그리고 관객이 전시장에 오래 머물 수 있는 전시를 만들 생각입니다.”

※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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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