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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이 조금이라도 나를 싫어하는 것 같으면, 먼저 선수치고 관계를 끊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거절당하는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해 ‘거절을 거절하는’ 이들이다. 단순히 소심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왜 이렇게 상대의 반응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걸까. 게티이미지뱅크
“아 미안, 깜빡했네. 나 지금 동남아야.”
안지수 씨(26·가명)는 친구가 자신과 약속한 날짜를 잊고 가족여행을 갔다는 얘기에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친구가 그와의 약속을 깜빡한 건 이번이 네 번째다. 안 씨는 친구가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마저 갖게 됐다. 그도 ‘보복’에 나섰다. 친구의 메시지를 ‘읽씹(읽고 답장하지 않음)’하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팔로우도 끊었다. ‘손절’을 단행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친구가 자신을 무시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가 안 씨처럼 반응하지는 않는다. 기분은 좀 상하지만 ‘바빠서 정신없었겠지’라며 받아들이거나, 기분이 언짢다는 의사 표현을 하는 식으로 대응할 수도 있다. 일부는 싸우거나, 삐치기도 할 것이다.
다만 안 씨처럼 ‘친구가 나를 무시했다’고 결론짓고, 관계를 아예 끊는 일은 드물다. 게다가 이런 일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면 그 이유를 꼼꼼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상대방이 나를 싫어한다고 느낄만한 작은 단서라도 발견하면 심한 거부감과 함께 관계맺기를 끝내기 일쑤다. 단순히 소심하거나 쪼잔해서 생기는 일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다. 왜 이렇게까지 과한 반응을 보이는 걸까.
“누가 날 싫어하지?” 과하게 ‘촉’ 발달
누군가에게 거부당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이를 좋아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같은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만, 어떤 사람은 큰 심리적 타격을 받는다. 이는 ‘거부 민감성(rejection sensitivity)’이 다른 데서 비롯된다. 거부 민감성이 높은 사람은 △거부당하는 상황을 두려워하고 △상대의 모호한 행동에도 ‘나를 거부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런 상황에 처하면 극단적으로 행동(관계 단절 등)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거절당할까 두려워 작은 부탁도 쉽게 요청하지 못한다. 길을 지나다 마주친 지인에게 먼저 인사를 했는데, 상대가 인사를 받지 않고 그냥 지나친 경우에서 거부 민감성이 낮은 사람들은 ‘제대로 못 봤나?’ ‘다른 생각을 했나 보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쉽게 잊어버린다. 반면 거부 민감성이 높은 사람들은 ‘상대가 나를 싫어하거나, 무시해서 일부러 인사를 안 받았다’고 곱씹을 가능성이 크다. 거부와 관련된 작은 사인에 과잉 각성된 셈이다. 모호한 단서에도 부정적인 의미를 찾는 데 집중하고, 편향된 해석을 내리거나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는 데 실패한다. 즉 상대방의 진의를 알지 못한 채 막연하게 넘겨짚고 상처받기 쉽다는 것이다.
거부 민감성이 높은 사람들은 미어캣처럼 온몸의 촉을 곤두세우고 상대가 나를 거부하는 사인을 보내는 것은 아닌지 살핀다. 위협을 빠르게 감지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방어하기 위한 것이다. pixabay(ⓒpeterstuartmill)
다우니 교수 연구진의 실험에 따르면 거부 민감성이 높은 사람들은 거부와 관련된 단서를 발견하면 진짜 위협을 만난 것처럼 몸의 경계 태세가 올라간다. 눈을 크게 뜬 채 깜빡거리며, 자율 신경계 반응이 강렬해진다. 연구진이 거부당한 상황을 연상시키는 자극으로 사용한 것은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들이다. 호퍼는 도시인의 외로움과 고립, 상실, 소외 등을 표현한 작품 세계로 유명하다. 거부 민감성이 높은 실험참가자들은 호퍼의 작품을 볼 때, 눈 깜빡거림 등 자율 신경계 활동이 크게 증가했다. 반대로 거부 민감성이 낮은 참가자들은 자율신경계에서 별다른 반응변화가 없었다.
미국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아침 해’(1952). 거부 민감성이 높은 실험참가자들은 도시인의 외로움과 고립을 표현한 호퍼의 작품들을 보자, 각성 된 신체 반응을 보였다. 휘트니 미술관
섣불리 판단하고 관계 끊어…우울·분노 경험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자기방어 시스템에서 비상 사인이 울린 뒤 나오는 후속 대응은 오히려 대인관계에 역효과를 낸다는 점이다. 후속 대응 방식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거부당한 원인이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나에게 문제가 있어서 상대방이 나를 거부했다’고 믿는다. 그래서 관계를 개선하려 노력하기보다는 조용히 끝내는 소극적인 선택을 한다. 상대를 향한 애정을 애써 거둬들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회피한다. 시간이 갈수록 대인관계에서 더 위축돼 심한 우울과 불안을 느낄 가능성도 크다.
두 번째 유형은 거부당한 원인이 ‘너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나는 아무 잘못 없고, 모든 게 상대방이 잘못한 탓이라고 생각하기 일쑤다. 이에 화가 많고 보복적이다. 먼저 싸움을 걸거나 때리는 등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거부 민감성이 높은 사람들은 상대가 자신을 무시했다고 여길 때 갑자기 화를 내기도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두 유형 모두 상대방의 진의를 파악하기 전에 자기가 거부당했다고 여기고, 서둘러 관계를 정리하려 애쓴다는 점에서 똑같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주변에 친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떨어지고, 마침내 사람이 얼마 남지 않는 경우가 많다. 거부 민감성이 높은 사람들은 연애나 결혼생활도 순탄치 않다. 상대가 나보다 덜 헌신적이고, 애정의 크기도 작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국제 학술지 ‘성격과 개인차’에 소개된 연구에 따르면 거부 민감성이 높은 사람들은 파트너와 갈등을 빈번하게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총 1만6955명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 65개를 종합 분석한 결과, 이들은 연인이나 배우자와 질투, 소통 단절, 폭력 등 다양한 문제를 겪었다. 연구진은 “거부 민감성이 높은 사람들은 상대방의 행동을 왜곡하여 해석하기 때문에 질투하고 오해하는 경향이 강했다”며 “이들 중 일부는 데이트 폭력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고 혔다.
어린 시절 부모·친구 관계가 ‘거부 민감성’에 영향
어린 시절 자녀는 부모에게 원하는 정서적 돌봄을 받지 못했을 경우, 부모가 자신을 거부했다고 느낀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수용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품을 수 있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많은 연구에 따르면 성장기 부모와의 관계에서 거부당하는 경험을 많이 할수록 거부 민감성이 높아진다. 부모가 자녀에게 무관심하거나, 성공할 때만 칭찬해주며 조건부 사랑을 주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자녀가 부모에게 정서적 관심과 돌봄을 원할 때 부모가 무시하거나 제대로 반응하지 않으면 자녀는 부모에게 거부당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타인이자, 정서적 안전기지가 돼야 할 부모로부터 거부당하는 경험이 쌓이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거부당할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갖는다. 부모에게서 온전히 수용받는 상황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는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라고 여기고, 대인관계에서 위축되거나 눈치를 보게 된다.
이 외에도 아동·청소년기에 또래 관계 역시 큰 영향을 미친다. 자녀가 성장할수록 부모에 대한 애착은 줄어드는 반면, 친구에 대한 애착은 증가한다. 또래 집단의 영향력이 커지는 이 시기에 또래에게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당하면 거부 민감성은 높아질 수 있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흐를 때 재빨리 알아차리기
그렇다면 성인이 된 지금 지나간 어린 시절을 바꿀 수도 없는 상황에서 마음 속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거부 민감성을 조절할 방법은 있을까. 전문가들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우선 문제를 깨닫고 원인을 이해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상황을 알게 됐다면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국내외 많은 연구에 따르면 부정적으로 흘러가는 생각을 조절하는 능력이 발달한 사람일수록 거부 민감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되려면 거부당했다고 여겨지는 작은 단서에 대한 집착은 버리고, 그 외의 가능성을 생각해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상황을 재구성해서 최대한 객관적인 생각을 해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료에게 채팅 메시지를 보냈는데, ‘읽씹’한 상황을 가정해보자. 거부 민감성이 높은 사람들은 ‘내가 싫어서 그런가?’ ‘내가 뭘 잘못했나?’ 등과 같은 생각에 빠지게 된다. 이 때 읽씹하게 된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다면 ‘오늘 바쁜가’라거나 ‘답장을 깜빡할 상황이 있었겠지’ 등과 같은 나에게 덜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자. 또 상대가 무시한 건 내가 보낸 메시지일 뿐, 내 존재 자체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대인관계에서 오해로 인한 섣부른 판단이 지속되면 결국엔 주변에 남은 사람이 얼마 없을지 모른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했던 행동들이 결국 나에게 외로움과 고립감을 가져다줄 수 있다. pixabay(ⓒAnemone123)
여기에 완벽하게 좋은 관계란 있을 수 없다는 점도 깨달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상대가 거부 사인을 보이면 이 관계는 끝난 것’이라는 식으로 대인관계에서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보자. 관계에서 완벽을 추구하다 보면 작은 갈등에도 완전히 균열이 생겼다고 여기기 쉽다. 세상에 갈등이 전혀 없는 관계란 있을 수 없다. 크고 작은 갈등이 생기더라도 이를 원만하게 해결하려 노력하고 상대방을 이해해나가는 것이 진짜 좋은 관계를 맺는 방법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거부민감성을 낮추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가족이나 친구, 동료 등 주변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깊은 친밀함을 느끼고, 많은 정서적 지지를 받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나의 든든한 정서적 자원이자 응원군이 될 수 있는 소중한 관계들을 일방적으로 정리해 온 건 아닌지, 오해로 그동안 애써 쌓아온 애정과 신뢰를 내가 먼저 깨뜨렸던 것은 아닌지를 오늘 다시 꼼꼼하게 되짚어보자.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