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해일’. 평양 노동신문=뉴스1
19일 북한이 9개월 만에 발사 사실을 공개한 핵어뢰 ‘해일’의 번호가 지난해 3, 4월 ‘해일’ ‘해일-1형’ ‘해일-2형’으로 순차적으로 높아지던 것과 달리 ‘해일-5-23’으로 바뀐 점을 우리 군 당국은 주목하고 있다. 해일의 사거리와 타격 정확도 등이 실전배치가 가능한 수준으로 개선됐음을 북한이 과시하려는 의도일 수 있어서다. 북한은 지난해 4월 4~7일 발사한 ‘해일-2형’을 71시간 6분에 걸쳐 1000km를 잠항했다고 보도한 이후 해일 발사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9개월간 비공개 발사를 거쳐 관련 기술을 크게로 발전시켰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어뢰 잠항 속도를 끌어올리는 대신 빠른 속도로 잠항할 때 발생하는 와류(渦流), 소음 등은 대폭 줄이는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새로운 번호를 부여했을 가능성도 있다.
● “9개월간 핵어뢰 기술 대폭 개선 가능성”
북한이 이날 핵어뢰 발사 사실을 공개하며 기존과 크게 다른 번호를 붙인 데 대해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단순히 타격 목표가 다른 또 다른 종류의 해일을 개발 중이라는 뜻일 수도 있지만 기술 개량 가능성도 있다”며 “북한은 어뢰 자체 기술은 오래전 확보한 만큼 최대한 깊은 수심에서 한미 감시자산에 사전 탐지되지 않고 표적 인근까지 빠르게 이동하는 능력을 확보하는데 사활을 걸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조용하고도 빠른 핵어뢰 개발을 통해 한반도 유사시 미군 증원 전력이 전개될 부산항 등 주요 항구와 한국 주요 해군기지를 타격하려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해일-5-23’이란 번호가 미국 핵무기 명칭을 흉내 낸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과거 실제 배치됐던 미국 핵무기 W70-1 등과 유사한 이름을 붙이는 식으로 핵 사용 위협 수위를 높인 것이란 분석이다.
북한은 이날 지난해 3차례에 걸쳐 ‘해일’을 발사했을 때와 달리 발사 장소나 잠항 사거리, 잠항 시간 등 구체적인 정보는 공개하지 않았다. 군 안팎에선 북한이 전략적인 정보 미공개를 통해 한미일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개량된 해일에 대한 공포를 키우는 것이란 분석과 함께 “실제 시험발사 없이 기만하는 블러핑(bluffin) 전술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북한은 이날 발사 현장 사진도 공개하지 않고 발사 지역도 “동해 수역”이라고만 했다.
● “북-러 군사협력 이후 北 위협 수준 달라져”
프라나이 바디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선임 국장은 18일(현지 시간)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주최한 행사에서 “현재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 협력은 전례가 없는 수준이다. 이런 협력의 결과로 향후 10년 안에 북한 위협의 성격이 급격하게 바뀔 수 있다”고 했다. 또 “지난 1년간 한국과 확장억제와 관련해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북한의 자체적인 (핵무기 기술) 진전만을 기초로 삼았으며, 이런 (북러) 협력이 진행되는 건 고려하지 않았다”고 했다. 북러의 군사적 밀착이 가속화된 이후 북한의 위협 수준이 확연히 달라졌다는 점을 짚으며 한국 방어를 위한 확장억제 정책을 더 강화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바디 국장의 언급은 워싱턴 정가에서 또다시 부상하고 있는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론’을 의식한 발언으로도 풀이됐다. 최근 미 일각에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한다면 북핵을 용인하고 한미일 연합훈련도 중단할 거란 전망이 확산되자 “한국도 자체 핵억지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바디 국장은 “북한의 고도화되는 위협에 직면해 확장억제 태세를 최대한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한국과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