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문학 신예 앤드루 포터 바쁜 일상에서 문득 펼쳐본 달콤 씁쓸한 기억의 편린들 ◇사라진 것들/앤드루 포터 지음·민은영 옮김/332쪽·1만8000원·문학동네
“내가 얼마나 평범해졌는지 봐. 그 옛날에는 이렇게 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어느 날 ‘나’는 옛 연인 마야에게 e메일을 받는다. 마야는 두 아이와 함께 교외의 집에 살고 있다. 매일 달리기하고 규칙적으로 식사한다. 머리는 짧게 자른 상태다. 마야가 보낸 사진을 보며 ‘나’는 마야의 옛 모습을 떠올린다. 물감이 튄 작업복을 입고, 히피풍의 샌들을 신은 채, 길게 늘어뜨린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그림을 그리던 마야의 과거와 현재는 너무도 다르다.
하지만 ‘나’는 마야에게 왜 그림을 그만뒀냐고 묻지 않는다. 흘러간 시간 속에서 모두의 인생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과거를 곱씹을 뿐이다. 마야와 함께 작은 아파트에 세 들어 살며 하고 싶던 일을 마음껏 하던 그 시절을 말이다. 신간에 포함된 단편소설 중 하나인 ‘넝쿨식물’의 내용이다.
신간에 담긴 15편의 단편소설은 대부분 중년의 화자가 청년 시절의 추억을 곱씹는 이야기다. 물론 친구들과 꿈꾸던 미래(단편소설 ‘라인벡’)처럼 불안하지만 빛나던 시절을 돌아보는 일은 무용하지 않다. 어떤 일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할 정도(단편소설 ‘오스틴’)로 성숙해졌다.
하지만 예술에 전념하던 시기는 떠났고(단편소설 ‘담배’), 촉망받던 예술적 재능이 연기처럼 사라진 사실(단편소설 ‘첼로’)은 부인할 수 없다. 우리가 가끔 친구들과 모여 ‘사라진 것들’을 떠올릴 때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감정이 드는 건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그저 우린 “해가 뜨고 어둠이 걷히면서 이젠 떠나야 한다는 것을, 거의 두려움에 가까운 무언가를 느끼며 깨닫기 전까지의 반시간”(단편 ‘사라진 것들’ 중)을 응시할 뿐이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