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운 이대목동병원 신경과 교수… 수면무호흡증-렘수면행동장애 수면리듬 망가져 괴로운 10대들… 불면증에 가려진 수면장애 많아 수면다원검사로 병 원인 찾아내… 수면무호흡증은 양압기 치료 수면 리듬은 멜라토닌으로 교정… 철분 보충, 하지불안증후군 개선
이향운 이대목동병원 신경과 교수는 밤에 잠이 안 온다고 해서 무조건 수면제나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이 교수는 수면다원검사를 통해 불면의 원인을 정확하게 찾아낸 뒤 치료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대목동병원 제공
30대 후반 남성 A 씨는 뒤통수가 뻐근하고 두통이 심해 새벽에 눈을 떴다. 상당히 어지러웠다. 말도 어눌해졌다. 왼쪽 팔다리가 마비돼 잘 움직일 수 없었다. 급히 응급실로 갔다. 의료진은 급성 뇌경색 진단을 내렸다.
젊은 나이인 데다 술 담배도 안 하는지라 A 씨는 의아했다. 이향운 이대목동병원 신경과 교수(뇌전증·수면센터 센터장)는 원인을 찾기 위해 수면다원검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수면장애가 뇌경색의 원인으로 판명됐다.
수면장애 하면 가장 먼저 불면증을 떠올린다. 불면증의 경우 수면제(수면유도제)나 항우울제를 복용한다. 하지만 이 처방이 전혀 효과가 없을 때도 있다. 이 교수는 “불면증이 아닌, 다른 수면장애일 때는 수면제만으로 치료가 되지 않는다. 원인을 찾아, 그에 맞춰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수면다원검사를 시행하면 여러 수면장애를 살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중증질환 유발하는 수면무호흡증
A 씨의 체중은 90kg에 육박했다. 체질량지수(BMI)는 30.1이었다. 고도비만에 가깝다. 코골이도 심하다고 했다. 의료진은 수면무호흡증이 있을 것으로 보고 수면다원검사를 진행했다. 검사 결과 A 씨는 1시간에 평균 87회 호흡을 하지 않았다. 혈중산소포화도는 59%까지 떨어졌다. 각각 35회 이상이거나 75% 미만이라면 중증 수면무호흡증으로 규정한다. 젊은 뇌경색은 바로 이 수면무호흡증에서부터 시작됐다. 이 교수는 “매일 새벽마다 산소가 부족해지니 저산소증이 생겼고, 그때마다 혈압이 불안정하게 상승했으며, 그 결과 뇌경색이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50대 후반 여성 B 씨는 폐경 이후로 코를 심하게 곯았다. 남편이 불평을 늘어놨지만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던 중 목과 가슴 부위가 답답해지면서 속이 메스꺼운 증세가 나타났다. 위내시경 검사를 받았지만, 아무런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다. 얼마 후 왼쪽 어깨와 팔이 뻐근하게 아파 동네 의원에 갔다. 의사는 협심증일 수 있으니 심장혈관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검사 결과 관상동맥 2곳이 심하게 좁아져 있었다. B 씨 또한 수면다원검사에서 수면무호흡증이 확인됐다. 그는 1시간에 평균 78회 무호흡이 나타났고, 혈중산소포화도는 73%까지 떨어졌다. A 씨가 그랬듯 수면무호흡증이 B 씨의 협심증을 유발한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양압기 치료를 받았다. 양압기는 기도가 막히는 것을 방지하는 의료 기기로, 잠을 잘 때 부착한다. 이 교수는 “두 사람 모두 양압기 치료와 함께 식이요법, 체중 조절 등을 병행한 덕분에 재발하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 잠자다가 배우자를 때린다?
60대 초반의 남성 C 씨는 평소에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꿈을 많이 꾼다고도 했다. 잠꼬대를 심하게 하는 편이었다. 손발을 허우적댈 때도 많았다. 심지어 가끔은 함께 자는 아내를 주먹으로 때리기도 했다. 단순한 불면증은 아닌 것 같았다. 검사 후 렘수면행동장애 진단이 떨어졌다. 렘수면은 하루에 3∼5회 반복된다. 이때 안구가 급속히 움직여서 렘(REM·Rapid Eye Movement)수면이라 부른다. 렘수면일 때의 뇌파는 깨어 있을 때와 비슷하다. 이 때문에 꿈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렘수면일 때 꿈을 더 자주 꾸는 건 아니다. 자꾸 깨기 때문에 꿈을 더 많이 기억할 뿐이다. 대체로 새벽으로 갈수록 렘수면 횟수가 많아진다.
일반적으로 잠을 자면 대뇌는 꿈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도록 뇌를 제어한다. 뇌가 아무런 기능을 못 하니 격렬한 꿈을 꾸더라도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렘수면에 문제가 생기면 뇌가 제어받지 않고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되면 C 씨처럼 잠을 자면서 꿈꾸는 행동을 실제로 옮긴다. 이것이 렘수면행동장애다.
렘수면행동장애를 방치하면 파킨슨병이나 치매로 악화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 교수는 “고령이 되면서 뇌의 퇴행성 변화가 진행된 거라고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다”고 말했다. C 씨도 실제로 몇 년 후 파킨슨병에 걸렸다.
간혹 10대 후반에도 렘수면행동장애가 생긴다. 뇌 질환이 원인일 수 있다. 이 교수가 치료한 10대 후반 환자 중에서도 이런 사례가 있었다. 렘수면행동장애의 원인을 찾다가 뇌간에서 종양을 발견한 것. 이 경우 종양을 치료해야 렘수면행동장애가 사라진다.
● 수면 리듬 깨지면 약도 안 들어
D 양의 어머니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침마다 딸을 깨우느라 진이 다 빠졌다. 학교에 보내는 게 전쟁통이었다. 게다가 D 양은 주말이 되면 하루 종일 잠만 잤다. 학교에서도 책상에 엎드려 잠만 자는 것 같은데 확인하기 어려워 속만 끓여야 했다.
D 양이나 어머니 모두 불면증으로 여겼다. 이 교수를 만나고 난 후에야 수면일주기장애라는 사실을 알았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수면 리듬이 깨지면서 수면 주기가 뒤로 밀린 것이다. 이 경우 수면제로는 해결할 수 없다. 수면 주기를 정상화하는 치료를 해야 한다.
집에서는 쉽지 않기에 5일 동안 입원해 치료했다. 이 교수는 D 양의 취침과 기상 시간을 모두 당겼다. 수면이 부족해지지 않고 일찍 잠들 수 있도록 멜라토닌 약물을 취침 2∼5시간 전에 투입했다. 원래 멜라토닌 호르몬은 잠이 들면 2∼3시간 만에 최고치에 이르고, 잠이 깰 때는 최저치로 떨어진다. 이 주기에 맞춰 인위적으로 멜라토닌을 공급한 것이다. 덕분에 D 양의 수면 주기는 어느 정도 정상 수준을 회복할 수 있었다. 지금은 오전 8시에 일어나고 새벽 한두 시에 자는 수면 리듬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교수는 “특히 학생들에서 이런 사례가 많다. 이를 피하려면 주중과 주말의 기상 시간 격차를 1시간 이내로 줄여야 한다. 잠을 보충한다며 주말에 몰아서 자면 수면 리듬은 더 망가진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잠자리에 들기 1시간 전부터 안대나 선글라스를 착용해 빛을 차단하는 게 멜라토닌의 분비와 수면에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바람이나 물 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를 약하게 틀어놓는 것도 좋다.
● 다리 떨림이 불면증 유발
40대 후반 여성 E 씨도 꽤 오랫동안 밤잠을 설쳤다. E 씨 또한 불면증이라 생각하고는 수면제를 먹었다. 처음에는 효과를 봤다. 약을 먹을 때는 잠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잠을 설치기 시작했다. 항우울제까지 처방받았다. 이번에는 효과가 없었다. 이후 E 씨는 밤잠을 자기 위해 약의 용량을 늘려나갔다. 하지만 불면증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나중에야 원인을 알게 됐다. 바로 하지불안증후군. 잠들 무렵, 다리를 심하게 떨거나 벌레가 기어가는 것처럼 가렵거나 찌릿찌릿한 증세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자주 깨는 병이다.
하지불안증후군을 유발하는 원인은 다양하다. 대체로 도파민 호르몬의 균형이 흐트러지거나 철분 결핍 등이 원인일 때가 많다. 또는 다른 병이 원인이 돼 하지불안증후군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 원인을 해결해야 하지불안증후군은 개선된다.
E 씨의 경우 혈액검사에서 철분 부족과 만성 빈혈이 확인됐다. 빈혈의 원인 질환을 파악하다 보니 자궁의 막이 과도하게 증식하는 자궁내막증도 발견됐다. 이 교수는 “E 씨에게는 주사를 통해 철분을 보충했더니 하지불안증후군도 저절로 개선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원인 질환을 치료하면 하지불안증후군은 생각보다 빨리 치료할 수 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