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자본시장법에 위배돼 거래 불가”… 개미 ‘코인판 쇄국정책’ 비판
“미국도 승인한 비트코인 현물 ETF 투자를 왜 막나?”
“비트코인 가격이 개당 2억 원을 넘을 전망이라고 해서 현물 ETF에 투자하려 했는데, 당혹스럽다.”
금융당국이 비트코인 현물 ETF(상장지수펀드) 거래를 금지한 것에 대해 일관되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월 10일(현지 시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한 데 대해 금융위원회(금융위)가 국내 증권사들의 매매 중개를 금지하자 시장 혼란이 커졌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당시 “국내 증권사가 해외에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ETF를 중개하는 건 가상자산에 대한 기존의 정부 입장과 자본시장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며 거래를 막았다.
금융당국이 비트코인 현물 ETF의 거래를 막자 논란이 커지고 있다. [GETTYIMAGES]
거래 불가 방침 바뀔 가능성 당분간 낮아
이후 비트코인 현물 ETF 투자를 준비하던 투자자뿐만 아니라 금융투자업계도 큰 혼선을 빚었다. 키움증권은 1월 11일 오후 4시경 미국 SEC가 승인한 블랙록(IBIT)·아크인베스트(ARKB) 등 11개 ETF 거래가 가능하다고 홈페이지에 공지했다가 30분 만에 이를 내렸다. KB증권은 기존에 거래되던 비트코인 선물 ETF 거래까지 중단했다가 ‘선물 ETF 거래는 문제 삼지 않겠다’는 금융위 방침이 나온 뒤 별도의 공지 없이 슬그머니 거래를 재개하기도 했다. 금융당국은 “해외 비트코인 선물 ETF는 현행처럼 거래되며, 현재 이를 달리 규율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증권사들이 당국의 조치가 선물 ETF에도 적용된다고 보고 거래를 막았고,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이 커지자 규제가 ‘현물 ETF’에 국한된다고 판단한 것이다.국내에서 갈팡질팡하는 사이 SEC 승인 다음 날인 1월 11일부터 거래가 시작된 11개의 비트코인 현물 ETF는 사흘 동안 약 100억 달러어치(13조1600억 원) 유통됐다. 스탠다드차타드는 비트코인 현물 ETF 시장이 올해 안에 500억~1000억 달러(131조6000억 원)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미국 자산운용사 프로쉐어스는 이번 상장에 이어 SEC에 비트코인 현물 기반 레버리지 ETF 5종을 신청하며 빠르게 대응해 나갔다. 전문가들은 미국에서 몇 달 내 이번에 승인된 비트코인 현물 ETF와 유사한 상품 12개가 상장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금융 중심지인 미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와 동시에 관련 시장 규모가 빠르게 확대될 전망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거래가 막히면서 금융당국에 대해 ‘시대착오적’이라거나 ‘코인판 쇄국정책’이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2021년 2월 캐나다를 시작으로 독일, 호주 등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상장됐을 당시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국내 증권사를 통해 이 ETF가 거래됐다. 그러다가 미국에서 승인이 나자 부랴부랴 거래를 막은 것이다. 일관성이 떨어지는 규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통령실은 최근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으로부터 비트코인 현물 ETF 관련 긴급 현안 보고를 받고, 현행 방침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금융위는 현행법상 거래 불가라는 견해를 거듭 밝히고 있어 당장 기존 방침이 바뀔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1월 15일 금융위는 자본시장법에서 정의하는 기초자산에 암호화폐가 포함되지 않아 국내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를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자본시장법 제4조(10항)에 따르면 기초자산은 금융투자상품, 통화(외국통화 포함), 일반상품, 신용위험, 그 밖에 자연적·환경적·경제적 현상 등에 속하는 위험으로서 합리적이고 적정한 방법에 의해 가격·이자율·지표·단위의 산출이나 평가가 가능한 것을 말한다. 또한 2017년 정부는 ‘가상통화 관련 긴급대책’을 통해 암호화폐 투기 심리를 자극하지 않도록 금융사의 암호화폐 보유·매입·담보취득·지분투자를 금지한 바 있다.
금융사의 암호화폐 소유는 불법
김 부위원장은 1월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상생의 금융, 기회의 사다리 확대’ 민생토론회에서 “기존 정부 방침은 금융사가 암호화폐를 소유 못하게 돼 있다”며 “비트코인 현물 ETF가 거래되면 금융사가 암호화폐를 소유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금융사가 가격변동성이 큰 암호화폐를 소유하면 금융사 건전성이 이슈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비트코인 현물 ETF를 거래하기 위해서는 운용사가 실물 비트코인을 보유해야 해서 비트코인에 직접 투자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다만 김 부위원장은 “올해 여름부터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된다”며 “앞으로 상황을 살펴보면서 면밀히 검토하겠다는 게 금융위 입장”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김주현 금융위 위원장은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 불허 관련해 질문을 받자 “보도자료를 여러 차례 냈다. 너무나 명확하게 입장이 나와 있다. 더하거나 뺄 게 없다”며 거래 금지에 대한 확고한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6년 전의 ‘가상통화 관련 긴급대책’이나 국내 현행법상 기초자산에 암호화폐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를 막은 것은 시대착오적 규제로 보인다”며 “무엇보다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가 이뤄지기 위해선 암호화폐나 거래소를 감독관리해야 하는데 이런 골치 아픈 일을 누구도 맡으려 하지 않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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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주간동아 1424호에 실렸습니다〉
한여진 주간동아 기자 119hotdo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