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아파트 주민들, 사업진척 기대감… 치솟은 공사비가 관건
1월 16일 오전 10시경 찾아간 서울 강남구 수서동 신동아 아파트(이하 수서 신동아). 이날 단지 주차장에선 한 주민이 이중 주차된 차를 손으로 밀어 안쪽에 주차된 차를 가까스로 빼내고 있었다. 지하주차장이 일반화하면서 거의 사라진 광경이지만 1992년 지어져 여전히 지상주차장을 사용 중인 이 아파트에선 흔한 일상이었다. 세월의 흔적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파트엔 엘리베이터가 운행되지 않는 층이 있었고, 세대 주방과 화장실에선 ‘녹물 필터’를 쓰고 있었다.
이런 수서 신동아에 최근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정부가 1월 10일 “30년 이상 노후 주택은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의 ‘재건축 패스트트랙’ 도입 구상을 내놨기 때문이다. 수서 신동아는 2022년부터 재건축을 추진해왔으나 현재 비용 문제로 ‘정밀 안전진단’이 중단된 상태다. 안전진단 유예(사업시행인가 전까지)를 골자로 하는 이 정책이 시행되면 재건축에 속도가 붙게 된다.
“안전진단비 안 걷히던 터… 환영”
서울 강남구 수서동 신동아 아파트. [이슬아 기자]
16일 기자가 찾은 수서 신동아에선 벌써부터 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주민 윤 모 씨(58)는 “(재건축이) 먼 얘기 같기도 하고 다들 여윳돈이 없다보니 안전진단 비용이 잘 안 걷힌 걸로 알고 있다”며 “천천히 비용을 마련하고 그 사이 다른 절차부터 진행하면 재건축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진척될 것 같다”고 말했다. 매매 시장도 꿈틀거리고 있었다.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는 “정부 발표 이후에 급매물을 중심으로 문의가 크게 늘었다”며 “집주인에게도 호재인 건 마찬가지라서 얼마 전엔 한 집주인이 기존에 내놨던 매물 호가를 1억 원가량 올리겠다고 연락해왔다”고 전했다.
재건축 패스트트랙의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은 수서 신동아만은 아니다. 서울 강남구, 노원구, 도봉구를 비롯한 수도권 등지엔 재건축 연한을 채웠거나 앞둔 노후 주택이 밀집해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재건축 정밀 안전진단 비용을 모금하고 있는 노원구 상계동 상계주공7단지 아파트에서도 들뜬 분위기가 감지됐다. 1월 17일 이 아파트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는 “한동안 매물 문의가 없다시피 했는데, 지난주부터 하루 서너 명씩 문의가 온다”며 “집값이 전보다 떨어진 상태라 큰돈 들이지 않고도 향후 재건축 이익을 볼 수 있을 듯하니 많이들 관심을 갖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 상계주공7단지 아파트. [지호영 기자]
서울 아파트 30%, 준공 30년 넘어
정부가 10일 재건축 패스트트랙 도입 구상을 발표하면서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재건축 사업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진 9단계 재건축 과정을 순차적으로 진행해야 했다면 앞으론 안전진단을 포함한 6단계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표 참조).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경우 안전진단 통과에만 10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정책이 현실화하면 재건축에 소요되는 기간은 최장 5~6년까지 줄어들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집주인들이 내놓은 매물을 회수하거나 호가를 올리고, 외부에선 매수 의향을 내비치는 것이다.
정부 발표와 노후 주택 통계를 종합해 보면 서울 아파트의 30%가 그 수혜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뒷면 그래픽 참조). 1월 14일 부동산R114 조사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182만6886채 가운데 준공된 지 30년이 넘은 아파트(50만2820채)의 비율은 27.5%로 집계됐다. 서울 노원구(9만6159채·구 전체 대비 59%), 도봉구(3만6428채·57%), 강남구(5만5403채·39%), 양천구(3만4349채·37%) 순으로 그 비중이 높았다. 전국 기준으로는 준공 후 30년 이상 된 아파트가 전체의 21.2%인 261만6048채였으며 그중 46.8%인 122만4089채가 수도권에 몰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재건축 패스트트랙을 두고 아직 축포를 터뜨리긴 이르다는 시각도 적잖다. 재건축 패스트트랙이 시행되기까지 첩첩산중을 거쳐야 해서다. 일단 재건축 관련법인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시정비법)’부터 개정해야 한다. 현행 도시정비법은 “재건축 대상 주택이 안전진단을 통과해야만 정비구역을 입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안전진단 없이는 재건축을 시작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 법을 개정하기 위해선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에 반대하고 있다. “막무가내식 규제 완화는 집값을 띄울 뿐 아니라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도시정비법 취지에 위배된다”는 게 더불어민주당 측 입장이다.
“사업성 옥석 가리기 이뤄질 것”
법 개정 문턱을 넘더라도 재건축 사업성은 별개의 문제로 남는다. 건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공사비가 치솟은 현 상황에선 재건축이 추진되더라도 조합원들이 져야 할 분담금 규모가 커진다. 실제로 최근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 아파트는 재건축 분담금이 가구당 5억~6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자 투표를 거쳐 시공사와 계약을 해지했다. 또 현재 재건축 연한을 채운 아파트의 상당수는 용적률 메리트가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미 용적률이 200% 내외라 재건축을 해도 용적률 제한(250~300%) 탓에 건물을 높이 지을 수 없고 그에 따라 실익이 크지 않을 거란 분석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위원은 1월 17일 전화 통화에서 “이번 정책이 현실화하면 재건축 연한이 찬 아파트들은 아마 집값 부양을 위해서라도 일단 재건축을 시작하려 할 것”이라며 “다만 지금 같은 여건 하에선 대부분이 중도 하차하고 옥석 가리기가 이뤄질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이어 “이미 용적률이 높은 데다 분담금까지 커졌는데, 모든 걸 감수하고 재건축을 진행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금리 인하로 전반적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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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주간동아 1424호에 실렸습니다]
이슬아 주간동아 기자 isla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