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속 주인공 이카리 신지의 모습. 흔들리는 내면과 특유의 우울한 표정으로 마니아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캐릭터이다. 라이크콘텐츠 제공
구작 마감 후 10년 만인 2007년부터 리부트한 신(新)극장판 시리즈의 경우 구작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일종의 대체 현실이라, 마니아들 중에선 TV판과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만을 시리즈 원작이자 진정한 종결로 보는 이들도 적잖다.
임현석 DX본부 전략팀 기자
평소 만화 취향이 비슷하지만 친하지는 않았던 옆 반 아이가 희귀작을 구했다는 소문을 들으면, 먼저 인사를 건네며 자신을 소개할 정도의 비즈니스 매너가 있어야만 그 시절 오타쿠였다. 그럼 옆 반 아이도 복된 소리 전한다는 마음으로 같이 영상을 보는 인류애를 품어야만 참된 오타쿠였고. 그러다가 그들은 해적판을 판다는 어느 역 근처 굴다리로 가는 모험에 함께하기도 했을 것이다. 굴다리의 음험한 분위기에 흠칫 놀라면서도,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 발을 내디뎠다.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랬던 시절이었다.
중2병을 앓으며 에반게리온을 봤으며, 지금도 에반게리온 얘기라면 밤새도록 이야기할 수 있는 동시대 오타쿠 손지상 서울웹툰아카데미 멘토는 “그 무렵은 사회성이 없으면 오타쿠를 할 수 없던 시대”라며 “온갖 과정을 거쳐 어렵게 구한 작품을 보기에 앞서 ‘이 작품을 구하고 접한 나, 칭찬해’ 정서가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렇기에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은 한국 오타쿠들이 특히 좋아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당시 어둠의 경로 내지는 일본에 사는 친척 등을 통해 어렵게 작품을 구하고 접했던 한국 오타쿠들은 손 작가 지적처럼 ‘나 칭찬해, 나 대단해’ 정서 속에 작품을 올려치기 하는 경향도 없잖아 있었다.
기자도 TV판 시리즈 마지막을 보면서 훌륭한 작품이라며 훌쩍이던 생각이 난다. 지금까지도 용두사미의 대명사처럼 불리며 조롱받는 TV판 갑분싸 ‘오메데토 엔딩’(축하해 엔딩·등장인물들이 주인공 주변에서 박수를 치며 축하하며 끝내는 엔딩)도 더할 수 없이 훌륭해 보였다. 감동을 받으려고 이미 준비가 다 돼 있는 상태로 에반게리온을 접했고, 턱없이 감동했다.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이 TV판 엔딩의 미흡한 마무리를 수습하기 위한 작품이라는 설명을 듣고선, 그게 미흡했던가 돌이켜야 할 만큼.
매트릭스로 철학 하기, 에반게리온으로 철학 하기가 유행이던 2000년대 초반 지적 탐구의 시대를 떠올리며 이제야 에반게리온 전체를 뒤늦게 배우러 가거나, 21세기 들어 신극장판을 통해 새롭게 접한 뒤 구작의 감동을 뒤늦게 접해 보려는 관객은 있을지도. 아니면 해적판 같은 걸로 처음 접했던 세대들이 다시 정당하게 값 치르고 뒤늦게 작품에 공식적으로 경의하려는 목적이거나.
그렇다면 탑건, 슬램덩크를 거쳐 에반게리온까지. 이젠 극장은 서사를 보는 곳이 아니라, 자기 성장 서사를 완성시키는 곳이 돼 가는 것은 아닐까. 상영에 들어가기 전, 극장이 어두워질 때 같은 희귀작을 같이 보던 그때 친구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른인 척하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어둠 속이 꼭 굴다리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