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석 사회부 차장
경북도는 18일 ‘저출산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중앙정부 중심의 저출산 대책을 지방정부 중심으로 대수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굳이 전쟁이라는 단어까지 쓴 이유에 대해 “다소 과격해 보일 수 있지만 전시 상황에 준하는 위기라는 심정으로 저출산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 초 경북도 모든 부서 직원에게 업무 영역과 관계없이 저출산 극복을 위한 정책 아이디어를 내도록 했다. 열흘 넘게 진행한 브레인스토밍에서 주택 정책을 비롯해 일·가정 양립, 완전 돌봄, 외국인 정책 등 분야를 막론하고 정책 아이디어 266개가 모였다. 이 중에서 10개를 추려 발표하고 전 직원과 전문가, 맞벌이 육아 중인 도민, 예비 부부 등 300여 명이 모여 끝장 토론을 벌였다. 신혼부부에 연 1% 금리로 3억 원을 대출해 주고 6년 이내에 아이 2명을 낳으면 전액 변제해 주거나, 김천혁신도시에 유명 대형 학원을 유치해 교육의 질을 높이자는 아이디어 등을 내놨다.
업무 보고 다음 날 이 지사는 통화에서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낳더라도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며 “현금 지원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국가와 공동체가 육아를 책임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저출산 극복 시범도시를 만들어 이곳에서 성공한 정책들이 전국적으로 확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며 “적당히 하는 척만 하다간 정말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에라도 반드시 성과를 내겠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와 국회 모두 저출산 극복에 한목소리를 낸 건 반가운 일이었다. 하지만 다른 게 하나 있었다. 절박함이었다. 인구가 줄어드는 걸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고 있는 지자체는 생존을 위한 절박함이 묻어났다. 하지만 여야는 눈앞에 다가온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메가톤급 공약을 발표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당장 국민의힘의 저출산 공약에 대해선 “공무원과 대기업 직원이나 체감할 만한 내용”이라는 지적이 나왔고, 민주당을 향해선 “연간 필요한 28조 원의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란 비판이 제기됐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총선을 앞두고 누가 어떤 이슈를 먼저 선점하느냐의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기 때문에 실현할 수 있는 공약만 발표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수도권 도시의 서울 편입을 둘러싼 메가시티 공약도 어젠다를 선점하기 위해 여권에서 선제적으로 제시했지만 당장 실현할 순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하지만 저출산 공약만큼은 정치권도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이미 저출산 문제는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경쟁의 관점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관점에서 다뤄야 하는 문제가 된 지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