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백 문제 시간 지난다고 흐지부지 안 돼 總選 악재 넘어 國政 부담으로 키울 텐가 국가 리더는 국민의 ‘집단 시선’ 외면 말아야 허나, 용산의 ‘의연한 태도’ 기대는 점점 난망
정용관 논설실장
‘조국흑서’의 공동 저자인 김경율 국민의힘 비대위원이 김건희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했다. 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만큼 극적인 삶을 살다간 인물은 드물다. 세계적인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는 “엄청난 운명의 수렁에 빠진 한 평범하기 그지없는 여인”으로 이 비극적 인물을 조명한다. 온갖 악덕, 타락, 사치, 방탕…. 그녀는 증오의 표적이었다. 물론 작가는 그녀의 경박하고 어리석은 짓에 대한 역사적 죄과도 분명히 지적했다. 사람들을 믿게 만든 ‘거짓의 탑’은 그냥 쌓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집권당의 공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제3자 논평하듯 느닷없이 비극적 인물을 공개 소환한 것은 적절치 않았다. 무엇보다 일반인들로 하여금 과거와 현재의 두 여성을 오버랩시켜 불필요한 상상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김 여사의 디올 백 사건이 감성의 문제라는 지적 자체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용산은 이 사건의 본질은 함정 몰카, 정치 공작이라고 한다. 최근엔 문제의 목사가 김 여사 부친과의 친분을 내세워 접근했다는 해명도 내놓았다. 총선용 공작 냄새는 풀풀 난다. 그게 아니라면 왜 몰카 영상을 찍은 뒤 1년 이상 쥐고 있다가 총선 몇 개월도 안 남긴 시점에 ‘김건희 특검법’ 처리를 앞두고 폭로했겠나. 문제는 교묘하고 음험한 총선용 공작이라 해서 “근데 그걸 왜 받았느냐”는 일반인들의 의문이 해소되진 않는다는 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과거 대통령 전용기 타고 인도 타지마할에 간 것과 비교하는 이들도 있다. 타지마할 전용기에 혀를 끌끌 찬 이들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디올 백 문제가 희석되진 않는다.
그뿐이었다. 제2부속실 설치 등은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여전히 격화소양 느낌이 드는 이유는 정작 사건의 당사자가 한 달 이상 관저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아무런 메시지도 내놓지 않고 있어서다. 그게 함정 몰카에 대한 분노 때문인지, 자괴감 때문인지, 또 다른 건이 나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인지 알 수는 없다. 사과를 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고 야권은 “대통령 물러나라”고 공세를 이어갈 것이므로 절대 사과를 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어느 쪽이든 명품백 이슈를 만든 이른바 작전세력은 속으로 쾌재를 부를 듯하다. 여권이 우왕좌왕하다 지나치게 방어에만 급급하며 점점 수렁에 빠져드는 꼴이란 얘기다.
조부, 증조부의 족보까지 파헤치고 낯 뜨거운 야담(野談)까지 끄집어내는 게 선거의 생리다.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서다. 이번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필자에겐 부차적인 이슈다. 최고 권력자 부부의 공적 처신과 책무가 이번 사건의 본질이란 얘기다. 영부인의 사적(私的) 행동이 촉발한 사건에 공적(公的) 역량이 얼마나 헛되이 소진되느냐의 문제다. 총선을 앞두고 가다듬을 정책, 국민에게 물어봐야 할 국가적 의제가 얼마나 많은가.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 ‘더 크라운’ 마지막 편에는 찰스 왕세자가 다이애나 비 사망 배후 의혹에 대해 수사관의 직접 신문을 받고 불편한 질문에 직접 대답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나온다. 성격은 다르지만 명품백 문제에도 그런 식의 원칙과 법의 잣대를 적용할 순 없나. 당사자가 육성으로 정직하게 경위를 설명하고 사과할 건 사과하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합당한 처분을 받겠다고 하면 될 일 아닌가. 명품백 사건은 통치의 문제도 아니고 대통령 배우자의 사려 깊지 못한 행위, 보좌 기능 마비의 문제다. 이 단순한 문제 하나 풀지 못하고 ‘국민 걱정’을 언급한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용산이 정면충돌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어떻게 하는 게 총선에 플러스가 되고 마이너스가 되느냐는 식의 접근은 여의도 문법일 뿐 일반 국민의 관심사가 아니다. “정직이 최상의 방책”이라는 경구가 새삼 떠오른다. 나아가 국가의 최고 리더는 팩트 못지않게 좋든 싫든 ‘국민 시선’에도 응대하고 설명할 의무가 있다. 그게 국민 신뢰를 얻고 국정의 힘을 확보하는 길이다. 공작에 당했다는 억울한 점이 있다 해도 자기 주변엔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모습, 국민은 그런 ‘의연한 태도’를 기대하고 있는데…. 그리 어려운 건가.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