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추락의 해부’ 31일 개봉
영화 ‘추락의 해부’에서 추락해 숨진 남편을 바라보며 산드라(잔드라 휠러)가 아들 다니얼(밀로 마차도 그라네르)을 끌어안고 절규하는 모습.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눈으로 뒤덮인 산 중턱 외딴집. 고요하고 평화로울 것만 같던 이곳에서 한 남자가 추락해 사망한다. 당시 집에 있던 건 오직 아내 산드라(잔드라 휠러)와 시각장애인인 열한 살 아들 다니엘(밀로 마차도 그라네르)뿐. 경찰은 타살 의혹을 제기하고 유력 용의자로 아내 산드라를 지목한다. 이따금 전쟁 같았지만 사랑으로 견뎌냈던 그들의 결혼생활은 살인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지자 법정에서 악의적으로 재구성된다. 남자의 죽음이 사고였는지, 살인이었는지, 자살이었는지 단서를 주지 않은 채 영화는 혼란스럽게 흘러간다. 지난해 제76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추락의 해부’다. 연출을 맡은 쥐스틴 트리에 감독(46)은 이 영화로 역대 세 번째 황금종려상 여성 수상자가 됐다.
영화는 남편을 살해한 용의자로 몰린 산드라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법정물이다. 산드라는 성공한 작가고, 그의 집필 활동을 위해 남편이 아들 다니엘의 육아를 도맡는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다니엘이 실명한 뒤 결혼생활이 삐걱거린다. 남편은 죄책감에 파묻혀 이전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산드라는 밖으로 나돌며 외도를 저지른다.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결혼생활을 지키지만 남편은 우울감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주인공이 가정의 주 수입원이면서 자신의 성적 욕망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여성’이라는 설정이 눈길을 끈다. 검사 측 주장 속 산드라는 남편의 무능을 질타하고, 다툴 땐 손찌검을 하기도 한다. 육아는 남편에게 맡기고, 남편이 포기한 집필 아이디어를 가져다 소설을 쓴 것에 대해서도 ‘허락을 구했다’며 당당하다. 확실한 물증이 없는 사건에서 검사 측은 그녀의 평소 행실을 문제 삼으며 ‘충분히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