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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부부터 컴퓨터 끄고 퇴근” 쪽지 보낸 최상목 부총리[세종팀의 정책워치]

입력 | 2024-01-23 11:00:00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직후인 지난해 12월 5일 서울 중구 서민금융진흥원에서 지명 소감 등을 발표하고 있는 최상목 부총리.



기획재정부 가족 여러분,
오늘은 직원들이 4시 퇴근하는 날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고 있는 업무는 신속히 마무리하고 불필요한 업무는 과감히 생략해서,
여러분의 귀중한 시간을 보다 더 가치 있는 일에 쓸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간부들이 솔선수범하여 먼저 컴퓨터를 끄고 퇴근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족, 친구들과 뜻깊은 시간을 보내면서 충분히 에너지를 충전하여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합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12일 기재부 직원 모두에게 이 같은 단체 쪽지를 보냈습니다. 오후 4시에 일찍 퇴근하는 유연근무일이니 간부들부터 모범을 보여 일찍 퇴근하라는 내용인데요.

기재부는 공식 유연근무일로 매월 둘째, 넷째 주 금요일을 택하고 있습니다. 국가공무원 복무규정(10조)에 근거해 공무원들은 근무 시간을 일부 조정해 일할 수 있습니다. 기재부는 월~목요일에 일부 추가 근무를 하고 한 달에 2번 금요일에 2시간 일찍 퇴근하도록 하는 자체 규정을 운영 중입니다.

하지만 윗사람 눈치 때문에 실제로 일찍 들어가기는 어려울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유연근무일은 초과 근무를 2시간 일찍 찍는 날’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고 하죠. 최 부총리는 직원들이 일찍 퇴근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준 셈입니다. 한 90년대생 사무관은 “금요일에 일이 없을 때 눈치 안 보고 퇴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셈이라 만족스럽다”고 평했습니다. 한 기재부 관계자는 “그간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항상 강조해왔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다”며 “부총리가 단체 쪽지를 보낸 것이 암묵적으로 일찍 퇴근할 수 있는 ‘명분’이 된 분위기”라고 했습니다.


정기 간부회의 날짜 옮겨 주말 근무 최소화
이달 취임한 최 부총리는 근무 시간보다는 효율을 중시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간 매주 일요일 열리던 정책점검간부회의 날짜를 금요일로 옮긴 것이 대표적입니다. 정책점검간부회의는 매주 부총리와 1·2차관, 1급(실장·차관보 등), 국별 정책국장까지 모여 경제 현안을 논하는 회의입니다.

그동안은 이 회의가 일요일에 열리는 바람에 기재부 내 상당수 직원이 일상적으로 주말 근무를 해야 했다고 합니다. 일요일 회의 안건을 준비하기 위해 각 국별 사무관이 최소 1명 이상 토요일에 출근해야 했고, 회의 결과에 따라 월요일 아침까지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일요일 저녁 일정을 취소하는 일도 잦았다는 겁니다. 한 사무관은 “일요일 회의에서 무슨 내용이 나올지 몰라 주말에도 항상 온콜(on-call·연락 대기) 상태여야 한다는 게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고 했습니다.

이 회의 시간이 금요일 아침으로 바뀌면서 많은 게 달라졌다는 게 기재부 직원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회의 자료를 평일 근무 시간에 준비할 수 있고, 회의 결과에 따른 보고서도 금요일 오후에 작성하고 퇴근하면 되니 주말에 연락 걱정 없이 편하게 쉴 수 있다는 겁니다.

22일 기재부 익명 게시판인 ‘공감소통’에는 “(금요일로 회의를 옮기는 것이) 누구 아이디어였는지 모르지만 생각해준 분께 감사하고, 채택해준 부총리께도 감사하다”며 “급한 일이 있으면 당연히 주말에도 일하는 게 맞지만 정기 회의가 일요일이라 불필요한 주말 근무가 많았다”는 글이 올라와 많은 공감을 얻기도 했습니다.


간부회의서 “형식적 의전 말고 실적” 강조

조응형 기자

불필요한 업무를 줄여주는 만큼 ‘성과를 내라’는 압박도 상당하다는데요. 최근 간부회의에서 최 부총리는 “(나에 대한) 형식적인 의전은 그만하고 실질적인 성과에 집중하라”는 메시지를 냈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기재부 간부들 사이에선 ‘야근하라는 것보다 오히려 더 무서운 이야기’라는 말도 나옵니다. 기재부 근무 시절 꼼꼼한 일 처리로 유명했던 최 부총리인 만큼 ‘성과를 내라’는 주문이 간부들로선 상당한 압박이라는 겁니다.


기재부가 위치한 정부세종청사 중앙동은 ‘불이 꺼지지 않는 건물’로 유명합니다. 예산, 세제를 비롯해 경제정책 전반을 운영하는 기재부는 정부부처 중에서도 가장 바쁜 곳으로 꼽힙니다. 그만큼 야근과 주말 근무도 많은데요. 이 때문에 워라밸을 중시하는 젊은 사무관들이 기재부를 기피한다는 얘기는 벌써 수 년 째 돌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최 부총리의 ‘형식보단 실적’ 메시지는 2030 사무관들 사이에선 일단 환영받는 분위깁니다.


야근, 주말 근무를 해야 제대로 일하는 거라는 분위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동료들이 많았어요. 최근 저연차 사무관들이 로스쿨, 사기업 등 다른 진로를 찾아 떠난 것도 이런 분위기 영향이 컸고요. 부총리께서 앞으로도 효율적인 업무 환경을 만드는 데 힘써주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기재부 A 사무관)


세종=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