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출시를 앞둔 애플의 XR(확장현실) 헤드셋 ‘비전 프로’가 온라인 사전 판매에서 초기 물량을 빠르게 매진시키며 화제성을 입증했다. 하지만 얼리 어답터를 넘어선 수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향후 시장 확장을 위한 생태계 형성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부호가 붙는다.
애플은 지난 19일(이하 현지시각) 애플 공식 홈페이지에서 비전 프로 예약 판매를 시작했다. 판매 시작 30분 만에 현장 수령 물량이 모두 매진됐으며, 초기 배송 물량도 지난 21일 무렵 매진되어 지금 주문하면 5~7주 이상 배송을 기다려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출처=애플
애플 전문가로 알려진 궈밍치 대만TF증권 애널리스트는 예상 초도 물량과 현재의 배송 대기 상황으로 미루어 봤을 때 사흘간의 사전 판매량이 16만~18만 대 수준일 것으로 추산했다. 궈밍치는 앞서 지난 12일 비전 프로의 초도 물량이 6만 대에서 8만 대 수준일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궈밍치를 비롯한 업계 전문가들은 애플의 비전 프로가 적어도 올해는 틈새시장을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전망한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비전 프로 출하량을 50만~60만 대 수준일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아이폰은 연간 출하량이 2억 대가 넘는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 데이비드 보그트 애널리스트는 “애플이 올해 비전 프로 최대 40만 출고할 경우 매출이 약 14억 달러(약 1조 8718억 원)에 달할 것”이라며 “이는 지난해 매출이 2830억 달러(약 378조 원)에 달했던 애플에는 미미한 수치”라고 설명했다.
비전 프로 사전 판매 페이지 / 출처=애플 홈페이지 캡처
물론 비전 프로가 최소 3499달러(약 467만 원)에 달하는 고가인 데다 실험적인 첫 제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장 판매량으로 성패를 가늠하는 건 부적절하다. 애플 또한 당장 비전 프로로 올릴 수익보다는 시장의 관심을 환기하는 효과나 앱 생태계 형성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로서는 비전 프로 앱 생태계에 대한 전망도 밝지만은 않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애플과 앱 개발자들 사이의 갈등이 비전 프로 생태계의 걸림돌이 될 위험이 있다”고 내다봤다. 높은 수수료 문제 등으로 인해 애플의 앱스토어 정책에 이미 ‘짜증이 난’ 앱 개발자들이 비전OS 앱 시장에 진입하는 걸 꺼린다는 것이다.
실제 애플과 직접적인 갈등을 겪은 스포티파이는 물론이고, 메타 스토어에는 이미 XR 전용 앱을 제공 중인 넷플릭스와 유튜브도 현재로서는 비전 프로 앱을 제공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비전 프로 운영체제인 '비전OS'의 앱 선택 화면 / 출처=애플
블룸버그는 애플 또한 비전 프로 생태계를 충분히 지원하지 않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현시점에서 팟캐스트, 뉴스, 캘린더, 미리 알림 등 애플 자체 앱 상당수가 비전 프로를 위해 재설계된 게 아닌, 아이패드 버전을 그대로 실행하는 데 그치고 있다고 것이다.
별도의 조종기를 사용한 이전 XR 헤드셋들과 달리 시선을 추적하는 아이 트래킹(Eye Tracking)과 손동작만을 활용하는 비전 프로의 조작 체계도 장벽으로 꼽힌다. 실제로 일부 개발자들은 이러한 비전 프로의 조작 체계를 앱에 적용하는 데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블룸버그는 특히 게이머 확보라는 플랫폼의 중요한 시험대에서, 비전 프로의 ‘혁신적’인 조작 체계가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시중에 존재하는 인기 XR 게임 상당수가 XR 전용 조종기에 맞춰 개발됐으며, 개발자들 또한 이를 선호한다는 이유다.
IT동아 권택경 기자 t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