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앤드루 스탠턴의 ‘월-E’
지구가 쓰레기로 뒤덮였다. 전자폐기물부터 잡다한 쓰레기까지 도저히 처치 곤란이다. 우주 유람선을 운영하는 거대 회사는 여행상품을 출시한다. 5년간 유람선 안에서 휴양을 즐기다 오면 지구가 깨끗이 청소되어 있을 거란다. 모두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난다. 이제 지구엔 월(WALL)-E라는 청소 로봇들만 남았다. 매일 아침 기계 몸을 태양광으로 충전한 후 해가 질 때까지 쉬지 않고 청소한다. 하지만 700년이 지나도 쓰레기와 오염이 여전해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정향 영화감독
전산 시스템이 발달하는데도 오히려 고지서들의 계산 오류가 잦다. 내 경우엔 다 초과 부과였다. 수작업 시절이었다면 “죄송합니다. 저희 쪽 실수입니다” 했을 텐데 요즘은 “입력할 때 오류가 있었네요. 전산상의 실수입니다” 식이다. 기계와 일을 나눴기에 잘못도 사이좋게 나눈다. 얼마 전, 우체국 은행 창구에서 돈을 찾았다.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세었는데 만 원 한 장이 부족했다. 금고에 들어가기 전에 기계로 세어놓은 터라 절대 틀릴 리 없다며 창구 직원은 나를 의심했다. 나를 찍은 보안 카메라들을 30분 넘게 확인한 후에야 만 원 한 장을 내밀었다. 사과의 말 대신 “기계는 절대 안 틀리는데…”만 반복했다. 내 양심보다 기계를 더 믿는 그녀 앞에서 만 원을 받는 내 손이 초라했다.
이정향 영화감독